[이데일리 마켓in 김연지 기자] 글로벌 사모대출 시장에서 기업에 빌려준 돈을 회수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사모대출은 은행 대신 사모펀드 운용사 등 민간 투자기관이 기업에 직접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투자 방식이다. 최근에는 기업이 빚을 갚을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다른 투자자에게 대출자산을 넘겨 투자금을 돌려주는 거래가 잇따르고 있다. 한번 투자하면 오랫동안 돈이 묶이기 일쑤였던 사모대출 시장에도 새로운 자금 회수의 길이 열리고 있는 셈이다.
빌려준 돈도 새 펀드로…대형 운용사들 잇단 거래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대형 사모펀드(PEF)운용사들이 기존 펀드의 대출자산을 새로운 펀드로 옮기는 거래에 잇달아 나서고 있다. 기업이 빌린 돈을 모두 갚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투자금을 회수하려는 기존 투자자와 이미 이자수익을 내는 대출자산을 확보하려는 새 투자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가장 최근 관련 거래에 나선 곳은 KKR이다. KKR은 지난 2017년 조성한 사모대출 펀드의 대출자산을 새로운 펀드로 옮기는 첫 컨티뉴에이션펀드(CV·기존 펀드의 자산을 새 펀드로 이전해 투자를 이어가는 방식) 거래를 마쳤다. 새 펀드에는 4억6000만달러(약 6114억원) 이상의 자금이 모인 상태로, 독일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가 주요 매수자로 참여했다.
이번 거래로 기존 투자자들은 △보유 지분을 팔아 투자금을 회수하거나 △새 펀드로 옮겨 투자를 이어가는 등 두 가지 선택지를 갖게 됐다. KKR 역시 대출자산을 급하게 처분하지 않고 기존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돌려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운용사와 투자자 모두에게 유리한 거래로 평가된다.
그렇다고 기존 펀드의 투자 성적이 나쁜 것도 아니다. KKR 공시자료에 따르면 해당 펀드의 지난 6월 말 기준 순내부수익률(IRR)은 11.0%, 투자원금 대비 가치배수(MOIC)는 1.7배를 기록했다. 다만 운용 성과와 별개로 신규 투자 재원을 확보하거나 자산 배분을 조정하려는 기관투자가들의 회수 수요는 꾸준히 발생한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KKR에 앞서 다른 대형 운용사들도 비슷한 거래를 성사시켰다. 지난 1월 크레센트캐피털은 지난 2016년 조성한 펀드의 대출자산 등을 옮기는 방식으로 32억달러(약 4조2784억원) 규모의 CV를 결성했다. 당시 사모대출 세컨더리 시장에서 단일 펀드 포트폴리오 기준 최대 규모 거래로 평가받았다. 이 밖에 블랙스톤도 이달 약 10억달러를 확보하면서 2022년 결성한 펀드의 대출자산을 새 펀드로 이전하는 거래를 추진했다.
지난해 거래액 반년 만에 넘어서…회수 공식에 변화대형 운용사들이 잇달아 거래에 나서면서 사모대출 세컨더리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에버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사모대출 세컨더리 거래액은 약 200억달러(약 26조7840억원)로 전년 109억달러(약 14조5972억원)보다 83% 늘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204억달러가 거래됐다. 불과 반년 만에 지난해 1년 치 거래 규모를 넘어선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거래를 주도하는 주체다. 지난해 전체 거래액의 약 60%였던 운용사 주도 거래 비중이 올해 상반기에는 83%까지 높아졌다. 금액으로는 170억달러(약 22조7494억원)에 달한다. 기존 투자자들이 보유한 펀드 지분을 파는 거래보다 운용사가 직접 자산을 새 펀드로 옮기는 거래가 시장 성장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오래전 조성된 사모대출 펀드들의 투자금 회수 시기가 다가온 영향이 크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에버코어에 따르면 지난 2018~2021년 만들어진 사모대출 펀드들은 회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기업에 빌려준 돈은 아직 남아 있는데 투자자들에게는 돈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펀드를 활용하는 운용사들이 많아진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때마침 이런 자산을 사들이려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에버코어가 집계한 올해 상반기 사모대출 세컨더리 시장의 미집행 투자약정액은 약 310억달러에 달한다. 조사에 참여한 매수자의 90% 이상은 앞으로 1년 안에 추가 자금을 모집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돈을 돌려받으려는 곳뿐 아니라 이를 받아 투자하려는 곳도 줄을 서고 있다는 얘기다.
시장에서는 이런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라자드 등은 올해 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사모대출 운용사들의 신규 거래가 늘고 관련 분야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자금도 유입되면서 사모대출 세컨더리 시장이 다른 대체투자 분야보다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며 “지속적인 유동성 확보 수요와 견조한 대출자산의 기초여건이 사모대출 세컨더리 거래를 뒷받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