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김연지 기자] 국내 사모펀드(PEF) 업계가 공식 연합회 출범을 추진하면서 해외 주요국의 관련 협회 사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새로 출범할 연합회의 역할과 기능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사모펀드 산업이 발달한 국가들의 운영 사례를 참고하려는 움직임이다.
해외에서는 PEF를 대변하는 단체들이 규제 대응뿐 아니라 운용사와 기관투자가 간 정보 보고 기준을 마련하는 등 시장의 관행을 개선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도 신설 연합회가 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외처럼 업계 공통의 기준을 마련하는 등 역할을 넓혀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연합회 출범 앞둔 국내 PEF…해외 사례 보니2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PEF운용사협의회는 전날 연차총회를 열고 기존 협의회를 해산한 뒤 가칭 ‘한국프라이빗에쿼티(PE)연합회’를 설립하기로 의결했다. 내년 1월 출범을 목표로 금융당국의 설립 허가 등 관련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임의단체로 운영해 온 협의회를 정식 법인으로 전환해 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결정은 홈플러스 사태 이후 PEF 규제 강화 논의가 본격화한 상황과 맞물려 있다. 국회에서 차입인수(LBO) 규제와 운용사 내부통제 강화 등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논의되면서 업계 차원의 공동 대응 필요성이 커졌다. 쉽게 말해 개별 운용사들의 의견을 모아 금융당국과 소통할 공식 창구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국내 PEF업계가 공식 연합회 출범을 준비하는 가운데 해외에서는 이미 업계 협회들이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다. 올해 들어 특히 눈에 띄는 곳은 영국이다. 영국 사모펀드·벤처캐피털협회(BVCA)는 지난 1월 명칭을 ‘UK프라이빗캐피털’로 바꿨다. 기존 협회의 법적 지위나 운영체계를 변경한 것은 아니지만, 사모펀드(PE)와 벤처캐피털(VC), 사모대출 등 기존에 대표해 온 사모자본 영역을 명칭에 담았다. 약 600개 회원사를 둔 이 단체는 정부 및 금융당국과의 정책 협의뿐 아니라 업계 공통 기준 마련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 같은 활동은 업계의 실무 부담을 줄이는 작업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일 UK프라이빗캐피털은 영국기업은행, 리프레임벤처와 함께 벤처캐피털 업계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정보 보고 양식을 표준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운용사와 기관투자가 사이의 정보 비대칭을 줄이는 동시에 운용사들이 출자자별 요구에 따라 유사한 자료를 반복 제출해야 하는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다. 기관투자가들도 통일된 양식을 통해 투자 현황을 보다 쉽게 비교할 수 있게 된다.
유럽은 공통 기준 마련, 미국은 규제 소송까지이 같은 움직임은 국가 간 협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유럽 사모자본협회인 인베스트유럽과 프랑스 사모자본협회인 프랑스인베스트도 같은 날 기존 ESG 보고 양식의 개정안을 발표했다. UK프라이빗캐피털을 비롯한 세 협회는 서로 다른 보고 기준을 맞춰 운용사들의 중복 보고 부담을 줄이고 기관투자가들이 투자 정보를 보다 쉽게 비교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업계 단체들이 규제당국을 상대로 직접 목소리를 낸 사례도 있다. 미국투자협의회(AIC)는 지난 2023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사모펀드 규제를 강화하자 다른 금융투자업계 단체들과 함께 소송에 나섰다. 당시 SEC는 운용사의 수수료와 비용, 투자 성과에 대한 정기적인 정보 공개를 확대하고 일부 투자자에 대한 우대 조치를 제한하는 규정을 도입했고, 업계에선 SEC가 법률상 권한을 넘어선 규제를 도입했다며 반발했다.
법원은 업계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 제5연방항소법원은 2024년 6월 SEC가 법적 권한을 넘어 규제를 도입했다고 판단해 해당 규정을 무효화했다. 투자자 보호를 내세웠지만 규제 강화가 사기나 기만행위 방지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AIC를 포함한 6개 업계 단체의 공동 대응이 규정 무효화로 이어진 셈이다.
한편 국내 PEF업계가 해외 협회들처럼 역할을 넓히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적지않다. 해외와 달리 국내는 이제 정식 연합회 설립에 나선 만큼 회원사 간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구체적인 활동 방향을 정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내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미국과 영국은 오랜 기간 공식 협회를 운영하며 업계 기준 마련 등으로 역할을 넓혀왔지만, 국내는 이제 첫발을 떼는 단계”라며 “당장은 규제 대응이 가장 시급하겠지만 앞으로 회원사들이 얼마나 뜻을 모으느냐에 따라 연합회가 할 수 있는 일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