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박소영 기자] 글로벌 스타트업의 성장 공식이 변하고 있다. 빠르게 제품·서비스를 내고 수차례 피봇(사업 모델 전환)하는 방식에서 초기부터 탄탄한 ‘매출’과 지속 가능한 사업 구조를 증명하는 방향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국내 벤처투자 시장 역시 투자금이 소수 유망 기업에 선별적으로 집행되는 구조가 굳어지는 추세다. 외형적인 성장보다 실제 사업성을 증명해야 투자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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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글로벌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스타트업 투자를 판단하는 핵심 잣대가 성장성에서 매출과 사업 지속 가능성을 확인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초기 창업 단계부터 명확한 고객과 비즈니스 모델(BM)을 확보하고 실제 매출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는지를 본다는 소리다.
이는 생성형 AI가 확산하면서 제품·서비스 개발에 속도가 붙고 유사한 서비스가 쏟아지고 있어서다. 단순히 기술력이나 아이디어가 좋아서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하는 시대는 지난 것이다.
글로벌 액셀러레이터(AC) 한 관계자는 “AI 스타트업 경우 기술 자체에 대한 진입 장벽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며 “연간반복매출(ARR)이나 매출 성장률, 고객 유지율 등 비즈니스 검증 지표가 이전보다 중요해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분위기 탓에 숫자 자체보다 ‘매출의 질’을 더 눈여겨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테크크런치는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많은 벤처캐피털(VC)이 시리즈A 투자 유치 전에 ARR 1억달러(약 1324억원)를 달성하지 못한 스타트업을 들여다보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보도했다.
테크크런치는 그러면서 일부 창업가가 제대로 ARR을 산정하지 않은 채 ARR 수치나 성장률로 발표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따라서 비즈니스 품질과 지속 가능성 등 세밀한 부분도 같이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 현지에서는 세콰이어나 안데르센호로위츠(a16z) 같은 글로벌 대형 VC가 선투자한 스타트업에 다른 투자자의 관심이 뒤따르는 현상도 나타난다. 글로벌 대형 VC가 투자한 기업이니 믿고 투자하는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피치북은 올해 1분기 미국 VC 시장을 평가하며 투자 자금이 소수 유망 기업에 집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체 투자액 2672억달러(약 353조 6392억원) 가운데 상위 5개 딜에 1956억달러(약 258조 8766억원)가 몰려 73.2%를 차지했다. 피치북은 이를 ‘컨센서스 딜의 시대’라고 명명했다. 투자자들이 이른바 톱딜로 평가되는 일부 기업에 자금을 집중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VC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벤처투자 시장 분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반응이다. 과거처럼 가파르게 외형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투자 판단 기준이 실제 매출과 수익성, 현금 흐름 등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따지는 식으로 바뀌어서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이 지난달 낸 ‘VC 투자로 읽는 IPO 시장 트렌드’에 따르면 업력 7년 초과인 후기 단계에 대한 벤처투자 규모는 상반기 기준 2024년 3억원, 2025년 3억 1000만원, 2026년 4억 7000만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삼정KPMG를 이를 두고 성장성과 수익성 모두를 중시하는 투자 기조를 반영했다고 평가했다.
국내 VC 한 관계자는 “최근 여러 하우스가 첨단산업 등 딥테크 투자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 기술 기업을 많이 들여다보고 있다”면서도 “기술만 뛰어나다고 언제까지 기다려줄 순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실제로 비즈니스 감각이 부족해 사업화가 잘 되지 않아 폐업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결국 펀드도 수익을 내야하기 때문에 실제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매출을 내는 기업 위주로 더 관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