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이건엄 기자] 기업의 공시 부담을 줄이겠다며 도입된 분기보고서 간소화 제도가 투자자와 기업 간 정보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간소화 조치로 인해 사업보고서에 포함되던 정보들이 분기보고서에서 빠지면서 정보이용자들이 기업의 경영 상황을 파악하는 데 제한이 따른다는 설명이다. 지배구조나 이사회 활동 등 정부가 강조하는 주식시장 투명성과 직결된 항목들까지 축소·제외되는 사례가 적지 않아 제도 전반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 여의도 증권가 전경.(사진=연합뉴스) |
|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상장기업 상당수가 금융감독원의 분기보고서 간소화 제도에 따라 일부 경영정보를 공시하지 않으면서 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투자에 필요한 최신 정보를 확인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기존 사업보고서에 명시돼 있던 내용이 갑자기 사라진 것으로 착각하는 사례도 발생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앞서 지난 2021년 금융감독원은 기업의 공시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분기보고서의 공시 항목을 기존 10개 대항목·33개 중항목에서 6개 대항목·20개 중항목으로 약 40% 축소했다. 투자자들의 관심이 크고 분기 중 변동성이 큰 재무 정보나 사업내용은 그대로 유지하되 외부감사, 최대주주 및 임원 현황, 우발채무 등은 특별한 변동이 없는 한 분기보고서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실제 삼성전자(005930)와 현대차(005380), SK스퀘어(402340), 롯데쇼핑(023530) 대한항공(003490) 등 국내 주요 대기업 상당수가 분기보고서에 △이사회 관련 사항 △감사제도 △계열회사 현황 △작성기준일 이후 주요 발생사항 등을 공시하지 않고 있다.
특히 각 기업이 자율적으로 공시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보니 같은 항목을 두고 어떤 기업은 빠뜨리고 어떤 기업은 그대로 공시하는 등 편차가 크다. 간소화 제도를 기업들이 자사에 유리한 방식으로 선택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CJ대한통운(000120)의 경우 연결재무제표 주석에서 종속회사 지분율마저 누락해 정보 공시가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공시 간소화가 기업과 정보이용자 간 정보 불균형을 초래해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공시 항목이 시기나 기업에 따라 달라지면 투자자들이 동일 업종이나 경쟁사의 경영 정보를 일관되게 파악하기 어려워지고, 이는 결국 시장의 정보 비대칭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병철 충북대 회계학과 교수는 “분기보고서에서 일부 항목들이 생략된 채 작성되는 것은 투자자 입장에서 아쉬운 부분이 분명히 있다”며 “정보이용자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되는 세부 정보는 가능한 한 모두 공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보고서상 양식은 간단해졌을지 몰라도 정보 이용자들은 이전 보고서를 일일이 찾아봐야 해 오히려 접근성과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제도의 취지를 이해하면서도 정보 이용자 관점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정조 리스크컨설팅코리아 대표는 “지금처럼 기업 부담만 줄여주는 방향의 공시 간소화는 재무정보의 본래 목적을 망각한 것”이라며 “투자자나 채권자가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우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공시 간소화 조치가 정부의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 방안으로 주식시장의 투명성 강화를 내세운 상황에서 지배구조나 이사회 활동 등 직결된 정보마저 분기보고서에서 빠지는 것은 기업 가치 제고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사회 구성이나 주요 의사결정 내역은 기업의 내부 통제 수준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라며 “이를 분기마다 확인할 수 없게 되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사전에 감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공시 간소화가 자칫 ‘투자자 신뢰 회복’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 보완이 요구된다”며 “향후 정부의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후속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와 관련 금감원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공시할 수 있도록 기업에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