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지영의 기자] SK하이닉스가 미국 손자회사 솔리다임의 상장 검토를 중단하면서 최대 20조원으로 거론됐던 외부 자금조달 구상에도 제동이 걸렸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용 낸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 신규 생산시설 확보 필요성은 그대로인 만큼 대체 재원 마련이 과제로 떠올랐다. 여기에 16조원 대규모 특별배당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설비투자와 주주환원을 병행하기 위한 자금조달 전략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IPO 중단에 20조원 조달 구상 제동…대안은2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 23일 솔리다임의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IPO)와 미국 나스닥 기업공개(IPO) 추진 검토를 중단한다고 공시했다. 지난 8월5일 상장 추진 소식이 알려진 지 약 두 달 반 만이다. 자본시장 여건과 주가 흐름 등을 고려할 때 IPO가 기존 주주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인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지난 2021년 인텔의 낸드 사업을 인수하면서 출범한 미국 회사다. 주력 제품인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는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로 수요가 늘고 있다. 이에 솔리다임은 미국 뉴욕주에 신규 낸드 생산시설을 건립하는 방안을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다롄 공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중국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일본 키옥시아 등 경쟁사의 증설 움직임에 대응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당초 시장에서는 솔리다임의 기업가치를 최대 1000억~1500억달러 수준으로 평가하는 전망이 나왔다. IPO를 통한 조달 규모도 100억~150억달러(최대 약 20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외부 자금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SK하이닉스가 추진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메모리 투자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별도 상장에 따른 기존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커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SK에서 SK스퀘어, SK하이닉스, 미국 AI컴퍼니를 거쳐 솔리다임으로 이어지는 다층 지배구조에 상장사가 추가되면 모회사 주주에게 돌아갈 경제적 이익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과 금융당국도 중복상장 문제를 제기했다.
상장 계획을 접으면서 투자재원 마련을 위한 선택지도 다시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글로벌 사모펀드(PEF) 등 외부 투자자 유치와 사모대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SK하이닉스의 직접 출자나 대여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외부 지분투자의 경우 차입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기존 주주의 지분율이 낮아질 수 있다. 반면 사모대출 등 차입을 활용하면 지분 희석을 피할 수 있지만 이자와 원금 상환 부담이 뒤따른다. SK하이닉스가 직접 자금을 투입하면 외부 투자자와 미래 수익을 나누지 않아도 되지만 모회사의 현금 부담이 높아진다.
외부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증자 사례도 있다. 지난해 SK온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2조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추진했다. 솔리다임이 미국 신규 공장을 건립할 경우 현지 정부 지원을 활용할 여지도 있다. 앞서 외신에서는 뉴욕주가 공장 유치를 위해 대규모 세제 혜택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특별배당 변수까지…투자·주주환원 병행 셈법은주주환원 확대 움직임도 향후 자금조달 전략의 변수로 떠올랐다. 이날 SK하이닉스가 일본 키옥시아 지분 매각 차익 약 20조원의 80%인 16조원 안팎을 특별배당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SK하이닉스는 해명공시를 통해 아직 확정된 사항은 없으며, 추가 주주환원 방안을 이사회 결의를 거쳐 오는 28일 3분기 실적발표에서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지난 21일 약 4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마무리했다. 취득한 주식은 전량 소각할 계획이다. 16조원 특별배당까지 실제로 단행할 경우 두 거래에 투입되는 자금만 약 56조원에 이른다. 솔리다임의 미국 신규 생산시설 확보 필요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주주환원과 설비투자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배분할지가 관건이다.
특히 IPO를 통한 외부 자기자본 조달 구상이 중단된 만큼 자체 현금 활용과 차입 확대, 새로운 구조의 비상장 지분투자 유치 가운데 어떤 방식을 선택할지에 관심이 모인다. SK하이닉스는 HBM과 D램 등 주력 사업에도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용인 600조원, 서남권 400조원, 청주 100조원 등 장기적으로 발표한 국내 투자구상만 총 1100조원에 달한다.
그룹 차원의 미국 AI 투자 전략도 변수다. 솔리다임의 모회사인 미국 AI컴퍼니는 SK그룹이 글로벌 AI 생태계 확장을 위해 구축한 투자 플랫폼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추진하는 ‘풀스택 AI’ 전략의 한 축인 만큼 솔리다임의 자금조달 방식이 달라지면 그룹의 AI 사업 투자계획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관건은 자금조달 비용과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 부담을 고려하면서 필요한 투자재원을 확보하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솔리다임의 생산시설 확충에 필요한 투자 규모와 집행 시기, 외부 자본 유치 조건 등을 다시 따져야 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