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이건엄 기자] SK하이닉스(000660)가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여전채)에 이어 정기예금담보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까지 매입하는 등 채권 투자 보폭을 넓히고 있다. 지난 8월 전면 중단했던 채권 투자를 위탁운용 방식으로 재개한 데 이어 4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까지 마무리하자 운용처 확대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 | SK하이닉스 이천 본사 전경. (사진=SK하이닉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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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예금 수준의 안정성을 갖춘 단기물을 중심으로 투자 대상을 다변화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시설투자와 주주환원 등 대규모 자금 수요를 앞둔 만큼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는 상품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최근 예금담보 ABCP를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6개 자산운용사에 총 3조원 규모의 채권 운용 자금을 맡겨 신용등급 AA0 이상 우량 여전채를 중심으로 매수에 나선 데 이어 만기가 짧은 단기 상품으로 투자 대상을 넓혔다.
예금담보 ABCP는 증권사가 세운 특수목적법인(SPC)이 시중은행 정기예금에 가입한 뒤 이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하는 단기 어음이다. 은행 예금을 담보로 하는 만큼 신용위험이 낮고 만기도 대체로 수개월 이내로 짧다. 정기예금과 달리 유통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어 중도 해지 부담 없이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이번 투자는 지난 8월 자금을 은행 예금으로 옮긴 운용 기조의 연장선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예금과 같은 수준의 안정성은 유지하면서 자금 회수는 한층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당시 SK하이닉스의 채권 매수 중단을 두고 시장에서는 주주환원 재원 마련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나왔다. 지난 6~7월 하루 1조원어치 이상 채권을 담던 SK하이닉스는 발행을 하루 앞둔 물량까지 거둬들이고 자금을 언제든 인출할 수 있는 시중은행 예금으로 돌렸다. 실제 SK하이닉스는 지난 8월 19일 40조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소각을 결의했고 지난달 21일 당초 일정보다 한 달가량 앞당겨 매입을 마무리했다. 대규모 현금 지출 부담을 덜어낸 만큼 채권 투자에 다시 속도를 내는 것으로 풀이된다.
투자 여력도 한층 커졌다. SK하이닉스는 3분기 매출 104조6155억원, 영업이익 83조3338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9월 말 현금성자산은 114조5000억원으로 전분기 말 대비 26조5000억원 늘었다. 차입금은 15조8000억원으로 줄면서 순현금은 98조7000억원까지 확대됐다.
자금운용 조직 보강도 맞물렸다. SK하이닉스는 지난 7월 자금팀 자산운용 경력직 채용 공고를 내고 지난달 채용 절차를 마무리했다. 선발 인력은 거시경제 분석을 바탕으로 한 자산배분 전략 수립과 정기예금, 국공채, 특수채, 회사채, 기업어음(CP), 전자단기사채(전단채) 등의 직접·위탁 운용 실적 관리, 리스크 헤지 업무를 맡는다. 경력직 1명을 뽑는 소규모 채용에도 여의도 증권가와 연기금 운용역들이 몰려 세자릿수 경쟁률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대기성 자금이라는 성격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다. 3분기 현금 증가분에는 지난 7월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으로 조달한 약 40조원이 반영됐다. 해당 자금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청주 패키징 공장 건설 등 시설투자에 쓰기로 한 돈이다. 여기에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8일 3분기 실적 발표와 함께 60조원 규모의 추가 주주환원 계획을 내놨다. 지난 8월 발표한 자사주 매입분을 포함한 올해 주주환원 예상 규모는 약 100조원에 달한다. 장기물보다는 만기가 짧고 환금성이 높은 상품 위주로 운용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하이닉스가 소프트뱅크나 버크셔해서웨이 보험사처럼 계속 플레이어로 남아주면 괜찮다”면서도 “SK하이닉스가 공장 건설 일정에 맞춰 만기를 정해 채권을 사들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어 “AI 호황으로 들어온 현금을 설비투자(캐펙스)용으로 파킹해 둔 것이라면 빠져나갈 때 그다음은 누구냐는 걱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