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박소영 기자] 투자 혹한기가 이어지면서 국내 투자은행(IB) 업계와 증권사가 공동운용(Co-GP) 펀드를 조성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업계는 은행권, 대기업 등 각종 주요 출자자(LP)들이 자금이 줄고 있어 고심하던 찰나에 증권사와의 동행이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 같다는 반응이다.
 | (사진=픽사베이) |
|
17일 국내 IB 업계에 따르면 국내 벤처캐피털(VC) A사가 대형 증권사 B사와 연내 결성을 목표로 공동운용(Co-GP) 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이들은 펀드 자금을 스타트업 육성·지원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이런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국내 투자사들과 증권사 간 동행이 몇 년 전부터 끈끈해지고 있다. 예컨대 가장 최근에는 에코프로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인 에코프로파트너스가 현대차증권과 500억원 규모 공동운용 펀드 결성했다. 이들은 지난해 말 정부 스케일업 팁스(TIPS) 운용사로 함께 선정되기도 한 만큼 이차전지와 미래 모빌리티 기업 투자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비슷한 시기 경동제약이 최대 주주로 있는 킹고투자파트너스가 대신증권과 공동운용 펀드를 결성했다. 지난해 여름 300억원 규모로 1차 클로징 한 뒤 최근 약 500억원으로 규모를 늘려 최종 클로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펀드의 주요 투자 대상은 메자닌 투자와 상장 전 지분 투자(프리 IPO)다.
두 업계의 동행은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시작됐다. 금융당국이 2016년 금융투자회사에 신기술사업금융업 등록을 허용한 데 이어, 2018년에는 중소벤처기업부가 벤처펀드 공동 운용사 범위를 증권사로 확대했다. 2020년에는 초기 창업기업에 대한 투자도 가능해졌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증권사가 창업기업을 발굴, 육성할 수 있도록 액셀러레이터(AC)겸업을 허용했다.
빗장이 활짝 열리니 두 업계의 협력은 더욱 끈끈해졌다. 예컨대 퓨처플레이는 삼성증권과 딥테크 스타트업에 주로 투자하는 펀드 3개를 결성한 바 있다. 유니콘 펀드 1호·2호·3호로 각각 143억원, 157억원, 113억원 규모로 결성했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역시 몇 년 전 삼성증권, DB금융투자증권과 약 114억원, 96억원, 50억원 규모의 펀드를 줄줄이 결성한 바 있다.
최근에는 증권사들이 VC 업계와 함께 컨소시엄을 결성하고 모태펀드 출자사업에 도전해 위탁운용사(GP)로 활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KB증권은 지난해 키로스벤처투자와 모태펀드 2차 정시출자 사업 ‘관광기업육성’ 분야에 선정돼 270억원 규모의 관광펀드를 결성했다. 키움증권은 프렌드투자파트너스와 컨소시엄을 결성해 지난해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의 400억원 규모 은행권 기후기술펀드 출자사업 GP로 선정된 바 있다.
증권사들은 VC 업계와의 동행이 투자 영역 확대로 이어지게 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 한 증권사 고액 자산관리(WM)센터 관계자는 “최근 몇 년 동안 비교적 젊은 고액자산가들이 많이 늘었는데 기존 고객들보다 스타트업과 같은 혁신기술 기업에 투자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편”이라며 “이들 수요를 맞추고자 벤처·스타트업 씬을 눈여겨보면서 각종 행사에 참석해 국내 또는 글로벌 VC들과의 교류·접점을 부지런히 늘리고 있다”고 전했다.
VC 업계도 자금 조달에 숨통이 트이는 셈이니 반기는 모양새다. 최근 들어 프로젝트 펀드 위탁운용사로 선정됐지만 자금을 제때 모으지 못하거나, 목표 기간까지 블라인드 펀드를 결성하지 못해 기간을 연장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어서다.
IB 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권 LP들의 모험자본에 대한 출자가 지난해부터 줄고 있고, 대기업 LP들도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해 일단 자금 푸는 걸 멈춘 상태”라며 “자금 조달이 어려운 만큼 업계에서 Co-GP 펀드를 운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더욱 커지고 있는데, 증권사와 함께 하는 것도 이 같은 움직임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