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의 첨단 반도체 개발을 견제하기 위해 수출 통제를 대폭 강화했다. 중국 기업이 미 정부의 제재 명단(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면, 앞으론 그 자회사들까지 자동으로 제재 대상에 포함된다. 화웨이나 SMIC와 같은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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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이날 미국의 수출 통제 대상 기업 명단에 오른 외국 기업 및 단체의 자회사까지 자동적으로 블랙리스트에 포함하는 새 규정을 발표했다. 새 규정은 제재 명단에 오른 기업이 직접 지분 50% 이상을 보유한 자회사에 우선 적용된다.
기존 제재 체계에서는 모회사가 제재 명단에 올라 있더라도 자회사가 별도 지정되지 않으면 거래가 가능했으나, 이번 조치로 그 방식이 차단된 것이다.
이에 따라 미 기업들은 앞으로 블랙리스트 기업의 자회사와 거래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 대부분 승인 자체가 거부될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다. 미 상무부가 이번 조치에 대해 “제재를 회피하려는 ‘우회 전략’(diversionary schemes)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미 정부는 중국 인민군의 현대화에 미국 기술이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반복적으로 제기해 왔다. 이번 조치 역시 미 상무부는 국가안보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실질적으론 중국의 첨단 반도체 개발을 늦추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기업 데이터를 분석하는 와이어스크린은 이번 개정으로 중국 국영기업 계열을 포함해 수천개의 자회사가 영향권에 들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화웨이와 SMIC 등의 자회사들이 이날 수출 금지 대상 기업에 추가되는 등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크리스 맥과이어 전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및 국무부 관료는 “이번 조치는 수출 통제 제도의 허점을 바로잡은 매우 필요한 개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는 모회사가 제재 명단에 올라도 자회사는 별도 지정되기 전까지 제재에서 벗어나는 비합리적인 상황이 이어졌다”며 “앞으로 미 기업들이 거래 상대방에 대해 더욱 철저한 실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에도 허점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특정 기업이 직접 지분을 보유하지 않고도 계열 구조나 우회 법인, 심지어 파티 인맥을 통해 사실상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어서다. 화웨이나 SMIC처럼 이미 구조조정을 통해 미 제재를 피할 방안을 모색해 온 중국 기업들에 새로운 우회 전략이 동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레고리 앨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적절하게 집행이 이뤄지면 이는 엄청난 변화”라면서도 “실사 기준이 지나치게 느슨해 기업들이 사실상 면책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기업들의 행동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엄격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 전직 미 정부 관리도 “이제 미 기업들이 ‘제한적인 실사’나 ‘그럴듯한 부인’에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공동 이사, 같은 주소지, 공산당 조직 연계 등 복잡한 소유 구조까지 파악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기술 경쟁과 안보 갈등을 다시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는 신호라는 해석도 있다. 특히 한 달 뒤 한국에서 열릴 예정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회동이 예고된 가운데, 양국 간 긴장을 한층 고조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은 이번 조치에 대해 즉각 반발했다. 중국 상무부는 성명을 통해 “이번 조치는 극도로 악의적”이라며 “미국이 국가안보 개념을 자의적으로 확장하고 수출 통제를 남용한 또다른 전형적 사례”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