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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 투자의 성공은 공정한 집행에 달려 있다

등록 2026-09-11 오전 5:02:00

수정 2026-09-11 오전 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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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헌 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지난해 한·미 관세 협상의 결과로 약속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가 본격적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최근 텍사스 가스 발전 사업이 ‘1호 투자 프로젝트’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가운데 알래스카 LNG 사업과 총 8기 규모의 원전 건설 사업도 핵심 검토 대상으로 알려져있다. 정부는 대외적으로 신중한 입장이나 대미 투자 패키지가 이제 본격적인 집행 단계에 진입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대미 투자를 결정한 정치·외교적 논리와 투자를 집행하는 경제 논리를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 이번 대미 투자는 미국의 고관세 통상 압박으로부터 우리 수출기업을 보호하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대한민국의 생존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국제 정치와 외교적 협상의 산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개별 사업의 선정과 집행은 철저히 경제적 효율성과 수익률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번 투자는 미국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원조금이나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다. 우리 국민의 소중한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철저히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집행돼야 하는 냉정한 비즈니스다.

투자 집행 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특정 국가의 설비를 맹목적으로 고집하거나 불공정하게 배제하는 행위다. 과거 국산품 우선 구매라는 명분에만 매몰돼 투자 수익률 악화를 자초하고 프로젝트 자체를 실패로 몰고 간 국내외 유수 사례들이 이를 증명한다. 글로벌 인프라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절대 공식은 가장 성능이 우수한 설비를 합리적인 가격에 조달하고 정해진 예산과 공기(工期) 내에 완공할 수 있는 최적의 기업을 파악하는 ‘공정 조달의 원칙’을 사수하는 것이다.

물론 한미 간 체결된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에는 단순한 공정 조달을 넘어 미국 측이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공급업체를 선정할 때 한국 기업을 우선 고려하기로 합의한 안전장치가 포함돼 있다. 해외 투자 시 자국 산업 생태계와 연계하려는 노력은 보호주의적 편법이 아니라 투자국으로서 당연히 추구해야 할 정당한 국익 확보 행위다.

그렇다고 우리 기업이 경쟁력과 관계없이 무조건 한국산 설비만을 공급해야 한다고 고집해서도 안 된다. 우리의 요구는 특혜가 아니라 미국 기업이나 글로벌 경쟁사들과 동등하게 겨룰 수 있는 공정한 경쟁 기회다. 특정 국가 제품에 대한 인위적 배제 없이 품질과 가격 경쟁력에 따라 설비를 선택하게 하되 세계 최고 수준의 EPC(설계·조달·시공) 역량을 갖춘 한국 기업들이 정당하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무대가 보장돼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오로지 제품과 기술 경쟁력만으로 선택받게 된다면 이번 대미 투자는 한국 제조업의 글로벌 영토를 확장하고 한 단계 더 도약시키는 결정적 기회가 될 것이다.

반대로 만약 미국산 우선 구매 논리에만 휘말려 기술력이 검증된 한국산 제품이 역차별을 받거나 배제되는 불공정 거래가 고착화한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대미 투자가 미국의 공장과 일자리만 늘려주고 국내에는 자금 유출과 산업 공동화라는 치명적인 상처만 남기는 독소 사업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국내 여론은 급격히 악화할 수밖에 없다.

대규모 대미 투자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대미투자특별법 체제 아래서 철저한 심의와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지속돼야 하는 국가적 대사다. 우리 기업이 정당한 입찰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면 행정부가 국회를 설득하기도, 국민에게 막대한 투자 조달 부담을 양해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한국 기업의 실질적 참여 기회 보장은 투자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경제적 필연 조건인 동시에 대미 투자의 국내 정치적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대미 투자는 통상 압박을 모면하기 위해 지불하는 일회성 비용에 머물 수도 있고 대한민국 제조업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 역사적 갈림길은 3500억 달러라는 거대한 투자 규모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얼마나 투명하고 공정하게 집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치적으로 결정된 투자를 철저히 경제적으로 집행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미 투자의 진정한 성패는 미국 땅에 얼마를 쏟아부었느냐가 아니라 그 투자의 결과로 대한민국 제조업의 체급이 얼마나 더 강해졌느냐로 준엄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논설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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