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만 바라본 확장 재정, 지속가능 얼마나 따졌나
등록 2026-11-04 오전 5:00:06
수정 2026-11-04 오전 5:00:06
이재명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 시정 연설에서 ‘성장’(36회)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소수의 성장이 아니라 모든 지역과 모든 국민이 기회와 성과를 고르게 누리는 ‘모두의 성장’으로 대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내년 예산(820조 9000억원)을 ‘성장 확산 예산’이라고 정의하면서 양적 성장이 아닌 개개인이 체감하는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잠재성장률 2년 연속 반등 전망이 나오고 연간 수출 1조 달러 달성이 가시화하는 등 경제 여건이 호전된 상황에서 재정 확대에 강한 자신감을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년 예산안을 세부적으로 보면 성장보다 분배와 현금성 복지에 무게가 실린 곳이 적지 않다. 특히 미래대응기금의 경우 내일을 위한 준비와는 관련 없는 씀씀이가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반도체 호황으로 생긴 추가 세수를 주요 재원으로 하는 162조 3000억원의 이 기금 중 상당 부분이 선심성 비판을 듣는 이유다. 조세재정연구원 박정흠 부연구위원이 내년 지출액 45조 5000억원을 분석한 결과만 봐도 34%인 15조 5000억원이 현금성 복지다. 출산·혼인 지원금, 청년 월세·예술문화패스 지원, 지방국립대 전액 장학금 등이 대표적 사례다.
미래대응기금의 지속가능을 우려하는 경고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추가 세수가 2029년부터 끊길 것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2027~2028년에 집중 발생하는 일시적 재원에 가깝다는 것이다. 외부 환경도 심상치 않다. 지난 주말 뉴욕 증시에서는 인텔 주가가 하루에 28.5% 대폭락했다. 알파벳 등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도 일제히 추락했다. 인공지능(AI) 투자 회의론이 확산하면서 비관적 전망이 엄습한 탓이다. AI 투자가 주춤해지면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줄고 이는 반도체에 전체 수출의 42.7%를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큰 충격으로 닥칠 수 있다.
정부는 경제가 뚜렷한 V자 회복을 보이고 있다고 말하지만 재정 확대의 페달을 마냥 밟아선 안 된다. 여야도 예산 심의 과정에서 선심성 지출을 최대한 걸러내고 미래대응기금은 본연의 목적에 맞는 용도로 재정비해야 한다. 나라 살림을 반도체 하나에 기댄 천수답식으로 운용해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