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이건엄 기자] 금융당국이 회계 투명성 제고를 목적으로 도입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오히려 투자 정보 이용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선임했던 감사인과 금융당국이 지정한 감사인 간 회계 해석 불일치로 수정 사례가 속출하면서 정보 신뢰성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전·당기 감사인 의견 조정협의회의 법적 구속력을 강화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 여의도 증권가 전경.(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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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도입 이후 전·당기 감사인 간 의견 불일치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투자자를 비롯한 정보이용자들의 의사결정에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있다. 자율적으로 선임했던 감사인이 금융당국 지정 감사인으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회계 해석의 차이가 발생하면서 기업 정보의 신뢰성을 저하시킨다는 지적이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주권상장법인 및 소유 경영 미분리 비상장법인이 외부 감사인을 6년 동안 자율적으로 선임하면 이후 3년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외부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감사의견 불일치가 발생할 경우 재무제표의 신뢰도가 흔들리면서 투자자와 채권자들이 기업의 재무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특히 지정 감사인이 ‘전기 오류 수정’을 요구하면 이전에 공시된 재무제표가 신뢰성을 잃게 되고, 투자의사 결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기업의 주가 변동성 증가와 더불어 채권자의 리스크 평가에도 혼선을 가져올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 씨티씨바이오(060590)는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대해 전·당기 감사인 간 의견 불일치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씨티씨바이오는 전기에 삼일회계법인이 외부감사인으로 선임돼 적정 의견을 받았으나 당기 감사를 맡은 삼정회계법인이 전기 감사에서 적정 의견을 받았던 일부 회계 처리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전기 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의 감사에 옳다고 결론이 났지만 회계 항목에서 의견 불일치가 발생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공시 부담이 생기고, 투자자와 채권자들은 판단에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한 공인회계사는 “자유수임 당시 기업과 감사인이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추며 회계 처리에 일관성을 유지했던 반면, 지정된 감사인은 새로운 시각에서 기업의 회계 자료를 들여다보며 이전의 판단과 충돌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이는 제도의 근본적 목적에 부합하지만, 단기적으로는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도 이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한국공인회계사회와 함께 지난 2020년부터 감사인 간 의견 불일치를 완화하기 위해 ‘전·당기 감사인 의견 조정협의회(이하 조정협)’를 운영 중이다. 조정협은 감사인 간 회계 해석 차이를 조정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조정협은 2~3차례 개최해 의견을 조율하고 협의 불가 시 주요 협의내용을 당기 사업보고서에 기재하게 된다.
문제는 조정협의회의 권고안이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이다. 결국 의견 불일치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로 투자자와 채권자들에게 정보가 공개된다는 의미다. 실제 한국공인회계사회 등에 따르면 지난 2020년 말 기준 조정협을 연 기업 20개사 중 25%에 달하는 5곳의 기업이 감사인 간 의견을 일치시키지 못했다.
이는 투자자와 채권자들에게 회계 정보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우고,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조정협의 강제력 부여와 명확한 가이드라인 설정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현재 권고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조정협은 사실상 법적 구속력이 없는 방관자로 봐도 무방하다”며 “감사인 의견 불일치가 채권자와 투자자의 판단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 이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