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김성수 기자] 호남권에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전력 수요가 몰리면서 전력망 확충과 안정적 운영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는 송전망을 새로 건설하는 동시에 기존 전력망의 활용도를 높이는 유연화 대책을 통해 재생에너지 수용 능력을 확대한다. 또한 대규모 전력 수요처 인근에 변전소를 선제적으로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 전력 수요 6.2GW곽은섭 한국전력공사 전력계통기획처장은 5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한전이 주최한 ‘BIXPO 2026’의 ‘호남권 반도체 메가프로젝트와 미래 전력인프라 포럼’에서 반도체와 피지컬 인공지능(AI), AI 데이터센터를 대규모 전력 수요를 이끌 3대 프로젝트로 꼽았다.
 | | 곽은섭 한국전력공사 전력계통기획처장이 5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호남권 반도체 메가프로젝트와 미래 전력인프라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성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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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전에 접수된 반도체 산업단지 관련 전력 공급 계획은 약 15GW 규모다. 이 가운데 호남권 반도체 프로젝트의 전력 수요만 약 6.2GW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곽 처장은 “과거에는 전력 수요가 기가와트(GW) 단위로 발생하는 일이 흔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반도체든 인공지능이든 5GW, 10GW 규모의 수요가 쉽게 나온다”며 “이제는 대규모 전력 수요에 대응해야 하는 ‘라지 로드(Large Load)의 시대’”라고 말했다.
AI 데이터센터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다. 곽 처장은 “AI 데이터센터는 기본적으로 1GW 단위로 접수되는 경우가 있다”며 “현재 계획된 물량에 더해 앞으로 추가 수요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규모 전력 수요가 비수도권으로 향하는 만큼 전력 인프라의 지역별 격차를 해소하는 일도 과제로 제시됐다.
곽 처장은 “1GW를 넘어서는 데이터센터는 기본적으로 345㎸급으로 접속해야 하는데, 비수도권에는 345㎸ 변전소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며 “수요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보니 기존 인프라도 수도권에 더 많이 구축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한전은 대규모 수요가 확정된 지역에 변전소를 미리 건설하는 ‘수요 유치형 변전소’ 사업을 추진한다. 곽 처장은 “비수도권에도 확실한 수요가 생기기 전에 정부가 선제적으로 345㎸급 변전소를 건설하자는 방안이 마련됐다”며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지자체와 첨단산업 기업, 데이터센터 사업자가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AI 데이터센터 사업자 입장에서는 인근에 345㎸ 변전소가 있는지가 상당히 중요하다”며 “변전소가 60㎞ 떨어져 있다면 송전선을 새로 건설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사업장 가까운 곳에 변전소가 있느냐가 입지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호남권은 전력 공급 여건 자체는 충분한 지역으로 평가했다. 곽 처장은 “호남권은 발전량이 지역 수요량보다 약 1.3배 많고, 전남만 보면 발전량이 수요량의 2배를 넘는다”며 “전남은 전국 최고 수준의 에너지 자급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재생에너지와 가스복합발전 설비가 추가로 들어서면 전력 공급 여력은 더 커질 전망이다. 다만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 등 다른 지역으로 보내기 위한 송전망 확충 과정에서는 주민 수용성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곽 처장은 “호남권에는 향후 약 70GW의 재생에너지가 들어설 예정이고, 생산한 전력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려면 그만큼 송전망이 필요하다”며 “송전선로 건설 과정에서 주민들이 연대해 반대하는 등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전, 대규모 수요 확정된 곳 변전소 짓는다송전망 건설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존 설비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정부의 전력망 혁신 대책에 포함된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을 활용해 특정 시간대에 집중되는 전력 흐름을 분산하고, 기존 송전선로의 이용률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곽 처장은 “송전망이 완공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릴 수는 없다”며 “기존 송전망을 어떻게 활용해 재생에너지를 추가로 접속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가 유연화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배터리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을 활용해 전력 수요가 몰리는 시간에는 충전하고 혼잡이 줄어드는 시간에는 방전하면 기존 송전선로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대책을 통해 “기존 송전망으로 50GW 이상의 재생에너지를 추가로 수용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전력망의 구조적 변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곽 처장은 우리나라 전력 시스템이 지난 70년간 경제성장에 맞춰 발전해 왔다며 “지난 70년 동안 발전 설비는 426배, 전력 수요는 314배 늘었다”고 설명했다. 송전선로 길이 증가 폭은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송전 용량과 전압을 높이는 방식으로 전력망의 수송 능력을 키워 왔다는 것이다.
다만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는 기존 전력 시스템의 안정성 유지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기존 원자력·석탄화력 등 동기발전기는 회전하는 발전기의 관성으로 전력계통의 급격한 변화를 흡수하는 역할을 해 왔다. 반면 태양광과 풍력 등 인버터 기반 발전원이 늘어나면 이러한 관성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곽 처장은 “기존 동기발전기 중심의 시스템에서는 발전기나 송전망에 문제가 생겨도 회전 관성이 충격을 흡수해 줬다”며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바뀌면 그 능력이 부족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전력계통의 작은 고장이 연쇄적으로 확산하는 상황을 막을 기술적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력 시스템은 하나가 무너지면 다음 설비로 고장이 번지는 도미노와 같은 성격이 있다”며 “첫 번째 고장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지만,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는 연쇄 붕괴를 막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동기조상기와 배터리, 그리드포밍 인버터 등 계통 안정화 설비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곽 처장은 “향후에는 동기조상기와 배터리, 그리드포밍 기술 등이 계통 안정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며 “전력 품질을 확보하는 차원을 넘어 계통 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본질적인 과제”라고 설명했다.
과전압과 과주파수에 대한 대비도 주문했다.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에서 고장이 발생해 인버터가 계통에서 이탈하면 전력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급격히 바뀌면서 전압과 주파수가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곽 처장은 “우리나라는 저전압과 저주파수 상황에 대비하는 데는 비교적 익숙하지만, 과전압과 과주파수 문제에는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다”며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과전압과 과주파수에 대해서도 매우 신중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는 전력 공급량을 확보하는 것만큼이나 전력을 안정적으로 연결하고 운영하는 체계를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며 “대규모 전력 수요와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응하려면 송전망 확충, 기존 설비 활용, 계통 안정화 대책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