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생산기지이자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인 중화권으로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자본시장의 시선이 향하고 있습니다. ‘자본中심’ 은 중국과 중화권 자본시장 소식을 전하는 시리즈입니다. 상하이·선전의 본토 시장부터 홍콩의 달러 유동성 창구, 대만의 반도체 밸류체인까지 중화권을 관통하는 자금의 흐름을 짚고, 아시아 금융 허브로서 중화권 시장의 현재 온도와 방향을 담습니다. [편집자주][이데일리 마켓in 원재연 기자] 회복 조짐을 보이던 홍콩 IPO 시장에 중국 당국의 규제 변수가 새로 떠올랐다. 중국이 홍콩 상장을 추진하는 일부 기업의 해외 지배구조를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중화권 회수시장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특히 홍콩 상장을 주요 엑시트 통로로 활용해 온 달러펀드 입장에서는 익숙한 회수 경로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시선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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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가 최근 일부 기업에 홍콩 상장을 추진하려면 이른바 ‘레드칩(red chip)’ 구조로 불리는 해외 지주회사 체계부터 정리하라는 취지의 지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당국 입장은 케이맨제도 등 해외 법인을 앞세운 레드칩 구조가 주주 구성이 불투명하고, 규제 리스크도 크다는게 문제라는 것이다. 일부 기업에는 기존 레드칩 구조를 손본 뒤 해외 지주회사 대신 중국 내 법인을 앞세운 ‘H주’ 방식으로 상장을 추진하라는 요구도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구조 재편에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리고 비용 부담도 적지 않아, 일부 기업은 아예 상장 계획을 늦추거나 접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에 규제 대상으로 거론되는 ‘레드칩’은 중국 기업이나 창업자가 케이맨제도 등 해외에 지주회사를 세우고, 이 회사를 상장 주체로 삼아 중국 내 사업회사를 지배하는 구조를 말한다. 중국 본토 법인이 직접 상장하는 대신 해외 법인을 앞세워 외자를 유치하고 홍콩 증시에 오를 수 있어 그동안 기술기업과 소비재 기업, 달러펀드가 널리 써온 방식이다. 투자와 회수 측면에서는 편리하지만, 중국 당국 입장에선 지배구조와 자금 흐름을 관리하기 까다로운 구조로 여겨져 왔다. 대표적으로는 차이나모바일, 시틱 등이 레드칩 기업으로 꼽힌다. 다만 중국 내 사업을 지배하는 해외 지주회사형 상장 구조까지 넓게 보면 알리바바, JD닷컴 같은 민영기업도 같은 범주에서 함께 거론된다.
중국은 이미 수년 전 부터 해외 상장 관리의 고삐를 죄어 왔다. 증감위는 지난 2023년 ‘해외 증권 발행 및 상장 관련 시범 관리조치’를 시행, 중국 기업의 직·간접 해외 상장을 신고·심사 체계 안에 넣었다. 최근 움직임은 말뿐이던 기준을 본격적으로 심사 단계에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중국 당국도 규정에 맞는 해외 상장은 계속 지원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시장에서는 해외 상장을 막는 것 자체보다 어떤 ‘구조’를 적정한 상장 방식으로 인정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당국의 태세 전환에 시장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최근 홍콩 IPO 시장이 막 회복세를 보이던 참이기 때문이다. 홍콩은 지난해 IPO로만 370억달러(약 53조7000억원) 이상을 조달했고, 이달 중순 기준 HKEX(홍콩증권거래소) 상장 신청 기업만 530곳을 넘겼다. 이달 20일에는 하루에만 반도체 소재 기업 에피월드 인터내셔널을 비롯해 중국 기업 5곳이 총 53억홍콩달러(약 9900억원) 규모 IPO에 나서기도 했다. 다행히도 이들 기업은 모두 중국 내 설립 법인이어서 이번 규제 대상인 레드칩 기업은 아니다.
자본시장 업계가 더 예민하게 보는 대목은 PE·VC의 회수 구조다. 달러펀드는 해외 기관투자가 자금을 달러로 모아 중국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로, 통상 중국 본토 법인보다 케이맨제도 등 해외 지주회사에 투자한 뒤 홍콩 상장을 통해 회수하는 방식을 써왔다. 그런데 레드칩 구조 활용이 어려워지면 투자 단계부터 지분 구조를 다시 짜야 할 가능성이 커지고, 상장 이후 배당과 지분 이전, 자금 반출 과정도 중국의 자본통제 아래서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외국계 투자자 입장에선 투자금 회수의 예측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홍콩 입장에서는 미묘한 상황이다. 홍콩거래소(HKEX)는 최근 차등의결권 기업의 상장 요건을 완화하는 등 신규 기업 유치에 나섰다. 상장 문턱을 낮춰 IPO 시장 경쟁력을 높이려는 의도다. 하지만 본토에서 레드칩 구조를 다시 엄격하게 보기 시작하면, 홍콩이 제도 완화로 끌어오려는 기업 일부는 애초에 상장 심사 단계까지 오기도 어려워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장은 이번 조치를 당국의 일회성 기강 잡기로만 보지 않는 분위기다. 중국 당국이 특히 들여다보는 대상이 본래 외국인 투자 유치나 규제 업종 대응을 위해 만들어진 전통적 레드칩보다, 홍콩 상장을 쉽게 하기 위해 새로 구조를 짠 ‘신형 레드칩’이라는 점도 이런 해석에 힘을 싣는다. 일부 기업에 H주 방식 상장을 사실상 유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홍콩 IPO 시장이 회복되더라도 모든 중국 기업에 상장 기회가 똑같이 열리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중국 내 법인을 앞세운 기업은 상대적으로 길이 열려 있지만, 해외 지주회사를 상장 주체로 둔 기업은 상장 준비 단계부터 다시 구조를 점검받아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