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원재연 기자] 벤처캐피탈(VC) 업계에게 올해 12월이 연중 가장 바쁜 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통상 11월이면 주요 출자 콘테스트가 마무리되고 12월 중순부터는 연말 정산 등으로 실무 부서는 다소 쉬어가는 분위기지만, 올해는 정책·민간 LP(출자자)의 출자·약정 심사가 연말까지 이어지며 이례적으로 오히려 업무가 집중된 모습이다.
20일 벤처투자 업계에 따르면 올해 모태펀드·성장금융·부처계정 등 정책 LP 전반에서 출자사업 일정이 한 해 전반으로 확장되며 실제 결성과 약정 시점이 4분기 후반으로 넘어가는 사례가 많아졌다. 일부 사업은 선정 후 3개월 내 우선 결성, 필요 시 6개월 연장 방식이 적용돼 운용사들의 대응 일정이 촘촘해졌다는 설명이다. 계정별 사업 개시 시점이 분산되고 평가·협의가 겹치면서 상반기 발표 사업도 연말까지 실무가 이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연말로 갈수록 출자사업 간 일정이 겹치는 경우도 늘었다. 기술·보건·전략산업 등 신규 계정이 잇따라 열리며 상반기 정시와 하반기 수시가 구분 없이 이어졌고, 일부 사업은 ‘3개월 내 우선 결성’, 다른 사업은 ‘연내 1차 클로징’을 요구해 일정 압박을 키웠다. 보건계정 7월 수시 사업은 신청조합 5곳이 몰리며 결성예정액 2600억원, 출자요청액 1000억원이 집계됐고 최종 선정된 2개 조합의 결성 규모는 1100억원으로 나타났다.
민간 LP들의 연내 집행 압박도 더해졌다. 대한지방행정공제회는 11월 ‘2025년 국내 VC 운용사 선정’ 출자사업 제안서 접수를 마친 뒤, 연내 GP 선정·약정 체결을 목표로 평가를 진행 중이다. 금융지주·학교법인·공제회·재단 등 다수 기관도 예산·자산배분 마감 시점을 12월로 두고 약정 검토를 이 시기에 몰아서 하고 있다.
정책환경 변화도 출자 스케줄을 움직인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이 모험자본 공급 확대 기조를 유지하며 기존 분야 외에도 기술·보건·전략 산업 등 신규 계정 출자를 늘리자, 정시·수시 공고가 연중 분산되는 대신 실제 결성과 약정은 연말 혹은 내년 초에 몰리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과거 금리 부담과 시장 둔화로 미뤄졌던 펀드레이징 수요가 올해 한꺼번에 풀린 점도 영향을 미쳤다. 기존 펀드의 재출자 협의, 결성 시한 조정, 새로운 전략펀드 준비가 맞물리며 일부 운용사는 여러 건의 클로징을 동시에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12월 피크’가 내년 상반기 결성 속도를 앞당길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국내 벤처투자액은 9.8조원, 펀드결성액은 9.7조원으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한 VC 관계자는 “원래 12월 말이면 대부분 기관이 사실상 문을 닫아 연말에는 일이 줄어드는 편인데, 올해는 ‘다음 달까지도 못 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정이 계속 붙어 있다”며 “정책·민간 LP 모두 연내 집행 압박이 커지면서 예산이 남은 계정은 연말까지 추가 공고가 나오는 등 예년보다 출자·평가가 길게 이어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