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지영의 기자] SK이노베이션(096770)이 자회사 SK엔무브 상장을 추진하면서 자본시장에서는 상장 후 SK온과 합병 시나리오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SK그룹은 양사 합병에 대해서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선을 그었지만, SK온이 처한 상황을 감안할 때 시차를 두고 결국 합병을 밀어붙일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SK온이 재무적투자자(FI)들에게 약속한 상장 시점이 다가오는 가운데 적자 지속으로 상장이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15일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지주사인 SK가 올해 SK엔무브를 상장시킨 후 내년께 SK온 합병을 추진하는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SK온이 시장에서 대규모 자금을 끌어오면서 투자자에게 약속했던 상장 시점이 임박했음에도 적자 지속으로 사실상 적격 상장이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우량기업인 SK엔무브를 상장시킨 뒤 SK온과 합병해 비상장사인 SK온의 우회상장을 시도하는 게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
SK온은 지난 2022년 이후 3조원의 외부 투자를 받으며 재무적 투자자(FI)들에게 오는 2026년까지 적격상장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약속한 기한 내 투자자들의 내부수익률(IRR) 7.5% 이상을 보장하는 수준으로 상장하지 못하면 투자자들은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지분까지 함께 매각해 투자금 회수를 시도할 수 있다. 상장 실패의 책임이 SK측에 있다고 판단될 경우 투자자들이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SK온이 약속 기한인 오는 2026년까지 상장에 실패할 경우 FI들과 협의를 통해 최대 2차례 상장 시점을 연기할 수는 있다. 다만 투자자들과 약속한 기한을 계속 지키지 못할 경우 SK온의 외부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SK그룹 차원에서는 연내 상장 가능성이 높은 SK엔무브를 SK온 우회상장 수단으로 쓸 경우 무리 없이 투자자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다.
SK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SK에서는 SK온 살리기에 이보다(SK엔무브 보다) 좋은 카드가 없는 실정이라 유력하게 밀어붙일 안”이라며 “SK엔무브가 일단 증시 문턱을 넘어야 하니 상장에 성공한 이후에 공식화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SK는 SK온의 적자폭을 줄이고 재무건전성을 보강하기 위해 SK엔무브와 합병하는 안을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2대주주인 사모펀드(PEF) IMM크레딧앤솔루션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현 시점 기준으로 SK이노베이션이 SK엔무브 지분을 70% 보유하고 있어 주주총회 단독 결의로 SK온과의 합병을 추진할 수는 있으나, 여전히 IMM크레딧앤솔루션 측의 강경 대응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다만 SK엔무브 상장 시 구주매출을 통해 IMM크레딧앤솔루션이 지분 전량을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 사모펀드가 나간 자리를 소수의 기관과 소액투자자 등이 채우게 되면 보다 수월하게 합병을 추진할 수 있다 .현재 SK엔무브는 지난해 11월 IPO 대표주관사로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을, 공동주관사는 KB증권과 JP모건,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을 선정해 상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본시장에서 두 회사의 합병 가능성에 우려를 제기하는 이유는 합병이 SK온에게는 약이 되지만, SK엔무브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SK엔무브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5조7796억원, 영업이익 9995억원, 상각전영업이익(EBITDA) 1조1628억원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수익성과 현금창출력을 갖춘 우량 기업이다. 반면 SK온은 지난해에도 1조 이상의 손실을 내는 등, 2021년 분사 이래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SK엔무브 주주들의 주주 권익 훼손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IB업계 고위 관계자는 “SK측은 대외적으로 부인하겠지만, 만약 정말로 SK엔무브 상장 이후 합병 계획이 없다면 상장 예비심사 청구 단계나 추후 심사 단계에서 한국거래소에 수년 내 상장 계획이 없다는 내용을 서약하는 방향이 적절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SK온과 SK엔무브의 합병 계획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SK엔무브 상장안은 최적의 여러 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다만 SK엔무브는 상장 전이고, SK온의 의무 상장 기한은 두 차례 연장이 가능한 상태라 (두 회사의 합병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것이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