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K유니콘에 돈 보따리를 풀어놓던 국내외 투자자들의 심경이 복잡해지고 있다. 투자한 기업들이 악조건 속에서도 IPO(기업공개)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시장에서 점치는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투자했다 하면 돈을 벌던 황금기가 막을 내리고 이제는 IPO 완주만 바라봐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이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IPO를 위한 의무보유확약에 동의하는 모습마저 감지된다. 향후 투자 과정에서 리스크 헷지(위험 회피)가 적용된 보수적인 투자 기조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 |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
|
‘대마불사’에 IPO 완주 나선 투자자들23일 자본시장에 따르면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는 지난 22일 오후 마켓컬리 운영사 컬리에 대해 예비 상장심사를 실시한 결과 승인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말 예심 신청에 나선 이후 약 5개월 만에 예비심사를 통과한 것이다.
상장 예비심사를 두고 자본시장 안팎에서 다양한 전망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재무적투자자(FI)들의 보유지분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상장 이후 불거질 오버행(잠재적 물량부담) 우려를 어떻게 불식시키느냐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았다.
업계에 따르면 컬리는 FI들에 최소 18개월 이상 보유 지분을 팔지 않을 것과 20% 이상 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공동 행사하겠다는 확약서를 받아 거래소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엑시트 제한 장치를 마련하면서 의기투합한 점이 상장 첫 관문을 넘었다는 평가다.
 | |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
|
내부 상황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투자자들의 경우 IPO 외에는 달리 지분을 매각할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의무보유확약에 동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른바 ‘대마불사(大馬不死)’를 위해 투자자들도 IPO 완주에 동참했다는 것이다.
한 투자 업계 관계자는 “컬리가 지난해 12월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 과정에서 몸값 4조원을 인정 받을 때만 해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지만 이후 공모주 시장이 급격히 꺾이지 않았나”라며 “올 들어 컬리 지분을 팔려는 움직임도 있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상황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으면서 IPO로 귀결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첫발을 뗐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공모 규모가 어떻게 정해지느냐도 관건이다. 초기 투자자들이야 미실현 수익이 줄어드는 점이 아쉬울 수 있지만, 투자 단계 막바지에 참여한 곳은 투자 당시 밸류에이션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상장 초기 엑시트를 고민하기보다 의무보유확약 기간에 실적 등 펀더멘털 반등을 노리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는 상황이다. 다만 엑시트 기간이 임박할 경우 불거질 리스크를 고려하면 시간을 미룬 것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있다.
지난 22일 코스피 시장에 상장한 쏘카의 상황도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 쏘카는 주요 주주들이 투자 당시 밸류에이션보다 낮은 몸값을 받아들이면서까지 상장을 강행했다. 쏘카는 지난 3월 롯데렌탈에 지분 13.9%를 1831억원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기업가치 약 1조3000억원을 인정받았지만 시가총액이 1조원을 밑도는 상황(23일 종가기준 9360억원)이다. IPO에 따른 당장의 수익 실현보다 중장기 성장 플랜을 고려한 행보라는 관측이 나온다.
컬리와 쏘카가 다른 점이 있다면 투자기간을 바라보는 인식 차이다. 기한 내 수익실현이 중요한 컬리 FI들 입장에서는 시간이 비교적 여유로운 쏘카의 전략적투자자(SI)와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향후 예비 공모주 투자에 더욱 깐깐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IPO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투자 검토를 보류하거나 보다 유리한 조건을 얻기 위한 요구가 더해질 수 있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실제로 글로벌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운용사들과 프리IPO 논의를 이어가던 전기차 배터리 업체 SK온이 국내 투자사들로 투자 논의를 선회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있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최근 달러 강세다 보니 국내 투자가 유리하게 조성되는 상황에서도 외국계 운용사 등 투자자들은 IPO 단계가 임박한 기업 투자에 유난히 보수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투자 당시 밸류를 보장해주는 요건을 두고 업체 측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투자를 계속 순연하는 것도 최근 자본시장에서 보이는 한 흐름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