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데칼코마니와 미국 월가시위
등록 2011-10-05 오후 3:15:00
수정 2011-10-05 오후 3:15:00
[이데일리 윤진섭 기자] 미술에 `데칼코마니` 기법이란 게 있다. 종이 위에 물감을 뿌려놓고 반으로 접거나 다른 종이를 덮어 찍어서 대칭되는 무늬를 만드는 회화기법이다. 그런데 이 기법은 예술이 아닌 사회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미국 월가 점령(occupy the wall) 시위가 확산일로다. 뉴욕 월가에서 시작된 시위는 보스턴, LA로, 이제는 국경을 넘어 캐나다까지 도로를 점령하고 있다. 미 당국은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오히려 지난 8월 영국의 런던처럼 폭동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게 미 당국이다.
혹자는 `양극화에 따른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논리로 미국 월가시위와 영국 런던 청년 폭동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의 폭동 시위는 젊은이들의 좌절감 소외, 허무주의, 정체성 부재 등 개인적이란 점에서 미국 월가 시위와는 성격이 다르다.
오히려 시위가 촉발된 배경을 따지자면 영국보다는 우리나라와 더 가깝다는 게 중론이다. 미국 월가 시위가 주요 도시로 확산되는 이유는 명쾌하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젊은 지식인층이 전면에 나서 미국의 모순을 냉철하게 지적하고 있어 시위대 주장에 대한 울림이 크다.
시위대가 내건 캐치프레이즈엔 `나는 99%다`는 표현이 있다. 상위 1%에 대한 지나친 부(富)의 쏠림을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은 정당한 부의 축적까지 문제를 삼고 있지 않다. 그들은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 정경유착, 부패 등 부조리한 현실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들은 무작정 `배가 고프니 빵을 달라`는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공정한 룰을 통한 경쟁 체제하에서 정당한 일자리를 달라는 게 시위대의 요구다. 제도적 모순에 대한 시정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 미 당국도 시위대를 폭력 집단으로 매도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합리적인 분노에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까지 시위에 참여하고, 미국 국민들도 지지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어떤가. 정경유착과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는 미국보다 심하면 심했지 못하지 않다. 저축은행 퇴출 사태에 권력 실세들의 비리 의혹이 불거졌다. 그 뿐이 아니다. 금융권은 가계부채가 위험하다며 대출 규제에 나서, 중소기업과 서민들을 난처한 상황으로 내몰았다.
그러나 은행은 예대 마진을 높여 사상 최대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게 최근 소식이다. 힘없고 못사는 사람만의 하소연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갈수록 얇아지는 중산층은 불안한 노후에 절망하고, 밑도 끝도 없는 사교육 부담과 일자리 없는 자식부양에 분노하는 게 요즘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한마디로 월가 점령 시위대가 정조준하고 있는 문제점과 우리네 문제가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미국 월가의 시위가 재현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미국의 사례는 타산지석이자 데칼코마니란 점을 정치권이나 정부 당국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