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한은의 모순..새삼 느끼는 `총재 말의 무게`
`매파적 성명서, 비둘기파적 코멘트`..자기부정 초래
시장기대 다르다고 무시해서야..해법찾기 `한은의 몫`
등록 2011-03-11 오전 10:51:13
수정 2011-03-11 오전 10:58:54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시장은 항상 시장만의 기대가 있다. 시장 기대가 내 기대와 다를 수 있다. 변수가 많은데 일대일로 연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우연히 맞을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11일 오전 해외 투자은행 전문가들과 가진 조찬간담회에서 이같은 얘기를 했다. 전날 기준금리를 올렸는데, 시장금리는 오히려 크게 하락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김 총재의 얘기는 맞다. 하지만 우려스럽기도 하다. 중앙은행의 정책금리는 벤치마크로서 시장금리를 움직이고, 이를 통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전반에 파급효과를 미치는 것이다.
시장이 나름의 기대만으로 기준금리와 다른 방향을 택한다면 그 만큼 정책효과는 반감되고 정책비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물가 상승을 막고 기대인플레를 떨어뜨리고 과도한 차입의욕을 낮추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는데, 시장금리는 더 낮은 쪽으로만 간다면 당초 노린 효과를 볼 수 없다.
때에 따라선 정책효과가 먹혀들지 않으니 다음에는 애초 계획했던 통화정책보다 더 강한 액션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이는 뜻하지 않은 경기 둔화나 이자부담 급증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래서 "내 기대와 시장 기대는 다르다"라는 해석이나 푸념에서 끝나선 안된다. 왜 그런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분간 기준금리가 오를 것 같지 않으니 채권을 사려는 쪽이 늘어난 때문이다. 실제 전날 시장상황만 봐도 기준금리 25bp 인상 발표 직후 급락했던 국채선물 가격은 곧바로 빠르게 반등했고 김 총재의 기자간담회가 시작된 후로 우상향곡선을 계속 그렸다.
김 총재가 의아한 건 이 대목일 수 있다.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시했는데, 왜 시장은 그렇게 안 받아들이는 걸까`라고.
그러나 그건 김 총재 혼자만의 생각이다. 시장은, 아니 간담회를 지켜본 대부분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총재는 대외 불확실성에 따른 성장률 상향조정 가능성을 부인했다. 특히 최대 화두인 물가에 대해서는 오히려 하반기엔 안정될 것이라고 했다. "물가에 국정의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대통령 발언이나 "높은 물가 오름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성명서(통화정책방향) 문구보다도 톤이 낮았다.
임지원 JP모간체이스 본부장도 이날 리포트에서 "총재 간담회 발언은 매파적이었던 성명서보다 못했다"며 "단기적으로도 금리를 언제 조정할지에 대한 힌트를 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결국 매파적인 성명서 내용을 총재가 직접 뒤엎어 버리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김 총재는 가뜩이나 금통위 내에서도 `비둘기파` 또는 `중도파`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매달 금리 결정이 만장일치가 아니다보니 총재의 입김도 어느 때보다 강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대중의 선입견이나 상황 변화를 염두에 두지 못했다.
또 하나, 김 총재의 발언이 너무 많다는 점도 문제다. 금통위 전날 국회 업무보고에서도 많은 얘기를 쏟아냈던 김 총재가 금리 인상후 성명서까지 나온 마당에 구구절절 현안들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리스크다.
뭔가 해법이 필요하다. 그걸 찾아내는 건 한은의 몫이다. 김 총재 얘기처럼 시장이 정책대로 움직여주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시장을 무시할 순 없다. 그래서 정책당국과 시장은 너무 멀어서도, 너무 가까워서도 안되는 관계라고도 한다.
이와 관련, 지난해 이데일리 설문조사 결과는 시사점을 준다. 당시 통화정책방향이 한은 정책기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의견은 전체 응답자 16명 가운데 2명에 불과했다. 기자간담회가 필요없다는 의견도 8명(50%)이나 됐다. `말 잔치`보다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성명서를 원한다는 얘기다.
마침 김 총재 부임 이후 통화정책방향에 향후 경제에 대한 전망부분이 새롭게 담기기 시작했고 문구도 예전과 달리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앞으로 연준이나 영란은행과 같이 세부적인 정책 시기 등을 명시할 계획도 있다. 이런 시장과의 괴리는 이성태 전 총재 때도 있었다. 그만큼 해묵은 얘기다. 이제는 숙제를 풀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