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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발상의 전환,콜럼버스의 달걀을 세워라

등록 2011-11-03 오후 1:32:54

수정 2011-11-03 오후 1: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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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돌이켜 보면 코웃음칠만큼 하찮은 것일 수도 있지만 상식과 고정관념이라는 단단한 틀을 깬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로 인해 인류 역사가 진보하는 모습을 우리는 수 차례 목격했다. 신대륙 발견과 더불어 해상무역의 황금기를 이끌어낸 콜럼버스의 달걀부터 소비자와 생산자의 경계를 무너뜨린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창시한 아이폰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패러다임은 항상 한 끗 차이로 이뤄졌다. 다소 거창한 듯 하지만 사실 우리 삶 곳곳에 발상의 전환은 숨겨져 있다. 기업금융도 그 중 하나다. 증권사들은 엄격한 법의 굴레를 지키면서 기업의 자금을 가장 효율적으로 조달해 줄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


CB·BW `틈새 아이디어`


지난 8월 17~18일 코오롱생명과학(102940)은 3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주주배정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진행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전체 배정물량 중 약 63%(189억원)에 대해 구주주청약이 이뤄졌고, 나머지 실권물량에 대해 일반공모를 한 결과 1조7000억원이 몰렸다.
 
주관증권사는 우리투자증권(005940)으로, 이는 국내 최초로 진행된 주주우선공모방식의 BW였다. 기존에는 BW를 일반공모나 혹은 제3자배정으로만 발행해왔다. 주주우선공모 BW는 주주들에게 우선적인 청약 기회를 제공하자는 단순한 발상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이러한 관행을 깨트리는데 6개월여의 시간이 소요됐다.

일본에서 복제약 생산권을 확보한 코오롱생명과학은 지난 2월 사업전개를 위한 자금조달을 계획했다. 자금조달 방식을 고심하던 가운데 주관사인 우리투자증권은 주주우선공모 방식의 BW를 제안하게 된다.

우리투자증권이 주안점을 둔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먼저 주가하락을 최소화하자는 것이었다. 유상증자를 하게 되면 당장 신주물량에 대한 우려로 주가급락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었다. 반면 BW는 증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가하락 부담을 덜 수 있다.

코오롱그룹이 지주사전환을 한 상황에서 공정거래법상 최대주주 코오롱(002020)은 상장사인 코오롱생명과학의 지분을 20% 이상 보유해야한다는 점도 고려대상이었다. 최대주주인 코오롱(20.5%)을 포함한 특수관계자들이 생명과학의 지분 40.8%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최대주주의 지분율 희석을 최소화하는 것이 두번째 목표였다. 일반공모 방식은 중장기적으로 희석 우려가 있다 보니 남은 것은 주주우선공모방식의 BW뿐이었다.

금감원을 감동시키다

하지만 금감원을 설득하는데 자그마치 3개월이 걸렸다. 과거 재벌가에서 만연했던 BW를 통한 편법 증여에 대한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일반공모 후 발생한 실권주를 최대주주가 인수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내걸면서 금감원을 설득했고, 결국 금감원으로부터 허가를 받았지만 여전히 실무적인 걸림돌이 남아 있었다.

윤병운 우리투자증권 이사는 “예탁결제원에 채권에 대한 주주배정을 대행해주는 전자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았고, 우리투자증권의 지점망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배정방식과 청약방법에 대한 문제점이 남아 있었다”고 회상했다.
 
결국 우리투자증권은 은행연계계좌를 통해 청약을 할 수 있게끔 하고, 청약일을 나흘 정도로 연장하면서 기존 주주들이 청약 참여를 독려했다. 자체 결제시스템을 개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복잡한 계산법 없이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자금을 안정적으로 유치할 수 있었다. 발상의 전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IB업계에서는 주주우선공모방식 BW가 주주들의 권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기업들의 니즈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이 성공리에 발행을 마치자 뒤이어 동부건설(005960)도 1000억원 규모의 주주우선공모 BW 발행을 추진했다.

지난 5월에는 두산건설(011160)이 신주인수권부사채(BW) 1000억원과 전환사채(CB) 1000억원을 동시에 발행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었지만 불과 3년전만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상법에 따르면 한 기업의 채권이 발행되는 중간에 다른 채권을 발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8월 LG이노텍(011070)은 일반공모 방식으로 BW 500억원과 CB 500억원을 발행했다. LED 관련 설비를 투자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주관사였던 우리투자증권은 BW와 CB 동시 발행을 강행했다. 동시발행은 당시 업계에서는 최초였다. 그들이 금감원을 설득한 논리는 간단했다. 동시발행이기 때문에 채권 발행 중에 또 다른 채권 발행을 금하는 상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과, 사실상 권리만 다를 뿐 둘다 똑같이 주식을 연계로 한 채권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당시 CB에는 3조원가량이 몰렸고, BW에는 4조원가량이 몰렸다. CB, BW 동시발행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였지만 동시에 어느 누구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아이디어였다.

99% 노력이 빚어낸 결정체

지난해 부산신항만 지분 일부를 매각해 자금을 조달했던 한진해운(117930)도 아이디어의 틈새를 이용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불황을 겪었던 한진그룹은 지난 2009년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했다. 올해 또다시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서긴 했지만 지난해만 해도 컨테이너 경기가 풀리면서 회사채 조달도 가능해지는 등 유동성 확보에도 숨통이 트이는 듯 했다. 물론 여전히 부채를 줄이고 자본을 늘려야 하는 체질 개선이 남아 있었다.
 
한진해운은 부산신항만 영업권을 분할해서 100% 자회사인 한진해운신항만을 세웠다. 30년간 부산신항만 운영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현금유입액을 현재 가치화해서 유가증권으로 만들어 매각하면 되겠다는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신항만 부지에 대한 실제 소유권은 국토해양부가 가지고 있으며 한진해운은 현재 이를 30년간 운영할 수 있는 운영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앞으로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는 수익을 기반으로 유가증권 가치를 실제화시킨 것이다.

지난해 6월 한진해운은 이 중 49%를 사모펀드 포세아노스유한회사에 매각한 뒤 2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경영권 유지에 필요한 51%의 지분을 제외한 나머지 지분 전량을 매각한 것이다. 이 자금은 지난해 체결한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이행하기 위해 곧바로 부채 상환에 사용됐다.

당시 매각을 담당했던 김종훈 리딩투자증권 전무는 “미래가치를 현재화해서 유동화하는 경우는 과거에도 몇몇 있었지만 해운업에서는 첫 번째 사례”라면서 “실물자산인 부동산이 아니더라도 예상되는 수익을 기반으로 증권화시켜 이를 매각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적중했다”고 말했다.

에디슨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찰나에 이뤄진 듯 보이는 `발상의 전환`도 사실 그 속에는 수많은 고민들이 축적돼 있다. 조영욱 우리투자증권 차장은 “2004년 최초로 코오롱 BW를 발행했을 때 직접 수작업으로 워런트와 사채 부분을 분리한 적도 있다”면서 “그동안 여러 딜들을 수행하면서 수많은 노하우들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딜을 진행하는데 자신이 있었다. 관계기관을 설득하는 것 외에 우리가 직접 준비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발상의 전환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제5호 마켓in`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5호 마켓in은 2011년 11월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344, bond@edaily.co.kr]

하지나 기자

hj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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