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지영의 기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에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명료하다. 물적분할과 중복상장으로 주주들이 눈 뜨고 도둑질 당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 표준만 따라가도 될 문제에 기업 눈치를 보는 한국정부가 제대로된 개선안을 못 내놓고 있다”
한 시장 전문가는 국내증시의 저평가 요인으로 작용하는 실정에 대해 이같이 일갈했다.
국내증시에서는 물적분할 직후 상장해 논란을 일으킨 지난 2022년 LG에너지솔루션 사태 이후 중복상장에 대한 비판이 해마다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수년째 해만 넘길 뿐, 실질적인 개선은 이뤄지지 않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고질적인 중복상장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중복상장이 만연하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인 지주사제도와 물적분할 제도를 함께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2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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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도 중복상장 문제 인식…핀셋규제로 보완 요구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소액주주의 권익 보호를 위해 정부가 꺼내 든 상법개정안은 오는 13일 국회 본회의에 오를 전망이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가 충실해야 하는 대상을 기존의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히고, 상장 회사의 전자 주주총회 도입을 의무화하는 조항 등을 포함하고 있다. 상법개정안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 의무를 넓혀 이사회의 중요한 결정이 일반 주주까지 모두 고려한 방향으로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기업의 물적분할과 중복상장 등을 비롯해 일반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도록 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에 포괄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시각에서다.
다만 상법 개정안이 여야간 공방과 재계의 거센 반발을 뚫고 국회 문턱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재계에서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지만 중복상장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상법을 개정해 이사의 책임 범위에 포괄적으로 주주의 이익을 넣기보다는 핀셋 규제를 통해 중복상장에 따른 피해를 막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 대기업 지주사 관계자는 “지주사 체제나 중복상장이 자금력 부족한 한국 기업들의 성장에 필요했던 면도 어느정도 있었지만 시대가 바뀌었다는 점에 기업들도 공감하고 있다”며 “과거에 비해 주주들의 인식이나 주주가치에 대한 눈높이가 달라진 만큼 중복상장에 따른 주주피해를 줄이기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에는 찬성한다”고 말했다.
허점 많은 국내 제도…“지주사·물적분할 제도 함께 손봐야”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복상장 문제를 해소하려면 국내 시장의 기본 제도상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환위기 이후 다급하게 도입해 소액주주 보호 개념이 미비한 지주사 제도와 물적분할 제도가 중복상장을 부추기고 있어 같이 손봐야 한다는 평가다.
우선 국내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지주회사가 보유해야 하는 자회사 지분율 하한은 30%다. 사업부를 몇개씩 물적분할해 별도 자회사로 만든 뒤 상장시켜도 지분율 30%만 지키면 문제가 없는 셈이다. 낮은 지분율로도 지배력을 유지하고 얼마든지 확대할 수 있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세금제도도 지주회사 운영과 유지에 유리하게 돼 있다.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이 20%만 넘으면 모회사 법인세가 80% 면제되고, 50% 이상이면 전부 면제 대상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측은 “미국은 자회사 지분율이 80% 미만이 되면 자회사 배당에 대한 모회사 법인세 면세 혜택을 대폭 줄인다”며 “지주회사가 자회사에 대해 최소한 50% 이상의 지분율을 확보하도록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상장 폐지나 매각 등을 통해 중복상장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적분할 제도도 개선이 필요하지만, 실효성 있는 대안 도입은 밀리고 있다. 지난 2022년 1월 LG에너지솔루션 상장에 대해 LG화학 주주의 반발이 거세게 일자 정부는 같은 해 9월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 관련 일반주주 권익 제고방안’을 내놨다. 물적분할 후 5년 내 자회사 상장 시 거래소가 모회사 주주에 대한 보호 노력을 심사하는 안, 물적분할을 반대하는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의무적으로 부여하는 안 등이다.
그러나 분할 5년이 지나면 자유롭게 상장을 추진할 수 있는 데다, 물적분할 발표 시 주가가 폭락해 모회사의 지분 매입에 유리해진다는 평가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물적분할 제도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기업 분할을 할 때 기존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해도 문제가 없고, 충분한 보상을 제시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문제라 이를 개선해야 한다”며 “물적분할을 하는 경우 모회사 주주들에게 신주인수권을 주거나, 물적분할 발표 이전 30거래일 평균가격에 매수할 의무가 있는 주식매청구권 등을 주는 등 보호 대안은 여러 가지로 마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실상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심사 강화를 통해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특별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