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금융과 실물사이
등록 2011-10-21 오후 1:13:15
수정 2011-10-21 오후 1:13:15
[이데일리 하수정 기자]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이 실물의 문제를 알리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고 했다. 금융위기 밑에는 실물의 위기가 잠재돼 있는데도 이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며 경제학자들이 실물경제와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평소 이 같이 금융시장 위기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경계해오던 김 총재가 실물경기라는 단어를 다시 꺼내들었다. 이번에는 금융과 실물경기의 일반적인 관계를 언급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9월과 10월, 기준금리 동결했던 배경이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파이낸셜(금융)-리얼섹터(실물) 링키지(연계)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하나의 정책 과제"라면서 "국내적, 국제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면밀한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에 10월 금리를 동결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유로존 위기로 금융시장이 요동친 이후 금융의 위기가 국내 실물경기에 전이됐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인가. 한은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다.
우선 금융과 실물의 연결고리는 대표적으로 은행 대출에서 찾을 수 있다. 금융시장에서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은행이 기업과 가계에 제대로 대출을 해주지 못하면서 실물경기가 위축될 수 있다. 아직 이 같은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 달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대비 6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정부가 대규모 가계대출 부실을 우려해 은행창구를 옥죈 영향이다. 기업대출은 전월대비 4조8000억원이나 증가했다.
한일 통화스왑을 700억달러로 대폭 확대한 이유에 외화자금조달시장의 안정화가 포함된다는 것도 이 부분을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화자금조달시장은 은행들이 수출입기업의 대출을 뒷받침하기 위해 달러를 조달하는 시장이다.
두번째는 수출입이다. 금융불안이 실물에 전이되고 있는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한은 초미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미국과 유럽의 소비위축이 우리나라 수출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달 무역수지는 흑자를 유지했지만 전년동월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문제는 위축의 정도다. 수출 증가세 30%가 당연시되고 있는 상황에서라면 지난 달 수출 증가율 18.8%는 큰 일날 숫자이지만, 글로벌 경기 둔화를 감안한다면 선방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수출입 추이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게 한은의 분위기다.
금융시장 불안이후 기업들의 투자동향도 간과할 수 없다. 금융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기업들이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9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대기업 체감경기는 2년 3개월만에 가장 낮았다.
시장에서는 실물경기에 대한 우려가 커질수록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이 나온다. 그러나 시장의 바램과는 달리, 한은이 실물경기를 바라보는 것은 금리 정상화 재개 시점을 가늠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해야하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는 맞아 보인다. 아직까지는 경기 확장 국면이며 절대적인 기준금리 수치가 낮은 수준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한은 내부의 분위기는 한 집행부가 비유한 이야기에서 정확히 드러난다.
영하 30도의 강추위가 올 줄 알고 엄청난 장작을 집어넣었는데, 실제 영하 5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면 장작을 빼야한다. 장작을 조금씩 빼고 있었는데 다시 추위가 찾아온다는 예보가 들려 더 이상 빼지 않고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장작이 많은 수준이다. 이번 추위가 가시면 다시 장작 빼는 작업을 해야하지 않겠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2008년 기준금리 5.25%를 정점으로 2009년 2월 2%까지 인하한 후 지난해부터 조금씩 금리를 인상해왔다. 현재 기준금리는 지난 6월 3.25%에서 넉 달간 멈춰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