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문정현 기자] 한국은행이 넉달째 기준금리를 3.25%로 묶어놨지만 동결의 무게는 점점 더해지고 있다. 7월 이후 석달간의 기준금리 동결이 악화되는 해외 분위기를 의식한 결정이었다면, 이번 달에는 국내 경기에 대한 걱정이 동결의 배경이다. 금통위의 시선이 점차 '해외 불확실성'에서 '국내 불확실성'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금통위의 판단 변화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한국은행은 이날 결정문에서 "해외 위험요인의 영향으로 성장의 하방위험이 증대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는데, 지난달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고 말한데 비해 경기 판단이 크게 악화됐다. 게다가 "내년 물가를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던 매파 위원들도 모두 동결로 돌아서 이번달 기준금리 결정은 만장일치였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도 금통위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경기에 대한 우려를 심심찮게 드러냈다. 국내 경기와 실물 경제에 대한 언급이 지난 달보다 부각됐다는 점이 눈에 띈다.
김 총재는 "경기가 언제 정상에 도달했고, 국면 전환이 언제 되느냐는 것은 매우 포착하기 어렵다"며 "금융과 실물경제 연계가 매우 중요한 정책과제로 부여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동안은 그리스 디폴트 가능성과 주변국·은행권 전염 가능성, 해외 금융시장 변동성의 확대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졌는데 이제는 해외 불확실성이 단기적으로 풀리기 어렵다는 전제 하에 '국내 실물 충격은 어느 정도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즉 그리스 구제금융안 통과로 유럽 재정위기가 한 풀 꺾이고 해외 금융시장 변동성이 잦아든다고 해도 실물지표의 악화가 멈추진 않는 한 기준금리 인상 주장이 대세로 부각되기 힘들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해외 중앙은행의 움직임도 한은의 행보를 소극적으로 만들고 있다. 브라질을 필두로 이스라엘, 인도네시아가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에서 일부 위원들이 3차 양적완화 채택을 주장한 상황에서 한은만 돌출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은 적다.
김 총재도 같은 맥락의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경제는 변화가 중요하며 한국이 국제경제에서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며 "선진국의 한 나라는 인플레이션 타깃(물가 목표치)이 3%인데 실제 물가가 4~4.5%가 돼도 오히려 통화를 더 이완시키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바로 이러한 배경 때문에 "금리인하는 없다"는 김 총재의 명확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인하 기대감이 시들지 않고 있다. "금리 정상화는 변함없다"는 발언보다 현재 경기에 대한 한은의 자신감 상실에 더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한은은 올들어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8%→ 4.6% → 4%대 초반으로 계속 낮춰잡았다. 주요국 경기가 개선되면 모르겠지만 이대로 상황이 지속되면 내년 들어 더 낮출 가능성도 열려 있다.
한가지 우려스러운 것은 "인하는 없다"는 시그널도, "금리정상화는 변함없다"는 발언도 시장에서 점점 `으레 하는 말`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변곡점이 찾아와 금리인상이 필요할 때 커뮤니케이션 차질이 발생하거나 한은의 의도와는 지나치게 벗어난 시장의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