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국민연금, 측정되지 않으면 관리되지 않는다
등록 2016-12-06 오전 7:24:00
수정 2016-12-06 오전 9:13:48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측정되지 않으면 관리되지 않는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한 말이다. 국민연금과 보건복지부가 국민으로부터 걷은 기금을 어떻게 회계처리하고 있는지를 보며 떠오른 구절이다.
공무원 연금개혁으로 국고 보전액을 앞으로 30년간 185조원, 70년간 497조원을 절감할 수 있었던 것은 앞으로 공무원들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이 얼마나 되는지 ‘연금충당부채’ 규모를 측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래에 지급할 연금액을 현재가치로 환산해 재무제표 상 부채항목에 기록하면서 공무원 연금공단의 재정 건전화 정도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민연금은 어떨까. 국민연금 기금계정의 재무상태표에는 장기충당부채 항목이 없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기금 부채비율은 2015년말 현재 0.15%에 불과하다. 국민에게서 걷은 돈이 전액 국민연금의 자기자본처럼 인식되고 운용되고 있다. 장기충당부채를 별도로 계산해 넣지 않는 것은 물론 국민연금이 뭘 잘못해서가 아니다. 2015년도 국가결산보고서를 보면 우리 정부는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보장성 기금에 대해서는 재원이 부족한 상황이 오더라도 책임져야 할 법적 의무가 없고 가입자 집단이 워낙 다양해 금액을 신뢰성 있게 추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연금충당부채를 계산하지 않고 있다.
국민들은 그러나 국민연금 홈페이지에서 앞으로 내가 받게 되는 월별 연금지급액을 십원 단위까지 확인할 수 있다. 또 해마다 정부는 인구와 경제성장률, 금리, 임금상승률 등 제반 변수들을 끌어다가 2083년까지의 국민연금 재정수지 지출액을 전망하고 있다. 지금은 미래 현금흐름만 예측하고 있지만 전체 자산과 부채를 신뢰성 있게 추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국민연금도 공무원연금처럼 부채 규모를 측정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게 회계 전문가 일각의 주장이다.
만약 국민연금이 국민에게 나눠줄 연금부채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합리적으로 추정하지 못한다면 이는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국가결산보고서의 국민연금 재정수지 추계결과를 보면 2043년까지는 국민연금이 걷어서 벌어들인 돈인 총수입이 연금으로 나눠줄 돈인 총지출보다 많지만 2044년부터 총지출이 총수입을 앞지르는 구조로 바뀐다. 2083년에는 518조원을 걷어 1388조원을 쓰게 되는 구조로 바뀔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수 백조원의 연기금 펑크가 나는 상황이 예측되고 있다는 것은 현재 국민들이 강제로 연금을 내면서도 이를 돌려받을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그들 스스로 이야기하듯 “정부가 재원 부족을 보증해주지 않는 돈” 아닌가. 국민에게 돌려줄 돈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돌려주지 않아도 아무런 책임이 없는 기관이라면 하루하루 팍팍한 삶을 사는 국민들의 호주머니로부터 연금을 강제로 걷어가지도 말아야 한다.
정확히 측정되지 않는 숫자는 관리 소홀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최근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3000억원대 손실이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찬성’ 의견을 낸 데 대한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것도 이런 회계처리의 불투명성과 연관성이 없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회계학자는 “국민연금이 청와대 등의 압력에 의해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근본에는 불투명한 회계처리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며 “국민에게 걷어서 나눠줘야 할 돈이 제대로 측정되지도 않고 결국에는 나눠줄 돈을 자기 기관의 자기자본처럼 인식되다 보니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일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