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성선화 기자]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검찰 압수수색이 들이 닥쳤던 지난달 23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을 이끄는 래리 핑크 회장은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으로부터 긴급한 미팅 취소 통보를 받고 발길을 돌렸다. 이날 예정됐던 미국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 팀과의 미팅은 물론 운용사 선정을 위한 프리젠테이션 일정도 전부 연기됐다.
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내년 2월 전주 이전을 앞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소위 `최순실 게이트`와 연관된 정치 외압 논란과 그에 따른 검찰 수사,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 등 고위인사들의 낙하산 논란, 전주로의 본사 이전 고민까지 그야말로 삼중고(三重苦)를 겪고 있는 탓에 유례없는 투자 공백사태를 맞고 있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한 국민연금기금의 의결권 행사가 외압에 의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기금측이 합병을 앞두고 삼성물산 주가가 역사적으로 가장 낮았던 시점에 주식을 매도해 합병비용을 낮췄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특히 이를 결정한 홍완선 전 본부장 인사에 최순실씨가 개입했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내년 2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이전을 앞두고 해외 핵심 운용인력들이 줄줄이 떠나고 있다. 500조원이 넘는 국민 노후자금을 책임지고 운용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벼랑 끝에 섰다.
내우외환에 연금의 ‘투자 시계’도 멈춰섰다. 연내 국민연금기금 실탄 1조원 투입 기대에 들떴던 코스닥시장이 당장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난달 4일 10개 위탁운용사 선정을 마쳤지만 자금 집행은 일부에 그쳤고 3000억원 추가 집행을 위한 운용사 선정은 잠정 중단됐다.
연말까지 의결키로 했던 투자건도 대부분 올스톱 됐다. 12월말까지 미국 발전인프라에 주로 투자하는 북미발전전문 블라인드 사모펀드(PEF)에 5000만달러를 집행하려던 투자심의가 연기됐고, 국내 여의도 파크워 중순위 대출 승인도 보류됐다.
더 큰 문제는 내년이다. 올해 투자 결산도 못하는 상황에서 내년 사업계획 수립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1년 동안의 투자 결산을 위해선 시가평가 작업 등 정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다”며 “관계자들이 검찰 조사를 받는 등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해 내년 사업계획은 손도 못 대고 있다”고 토로했다.
현재 542조원인 국민연금 적립금은 5년 후인 2023년엔 1000조원까지 돌파하게 된다. 오는 2043년까지 순증하는 연금 적립규모는 최대 2561조원에 이른 뒤 감소세로 돌아서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투자수익 확대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요즘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국민연금기금이 글로벌 `넘버 3` 공적연금에 걸맞게 거버넌스(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전략적 자산배분과 투자전술을 바꿔야 할 때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에 종속된 지배구조에서 탈피해 이사회 경영권이 확보되는 독립적인 구조로 가야 한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