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박소영 기자] 2019년 편법 운용으로 펀드런이 발생하면서 환매중단 상황까지 간 ‘라임 사태’로 한국에서 헤지펀드 존재감은 약해졌다. 2009년 ‘한국형 헤지펀드’가 도입된 후 시장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지만 라임자산운용과 옵티머스자산운용의 불법 운용으로 문제가 터지자 정부는 사모펀드 체계를 바꿨다. 기존 펀드 운용목적에 따라 경영참여형과 전문투자형(헤지펀드)으로 나눴던 것을 투자자에 따라 일반과 기관전용 사모펀드로 재편한 것이다.
이후 기업 인수합병(M&A)이나 투자에 있어서 기존 경영참여형으로 분류됐던 사모펀드(PEF)의 활약은 갈수록 커졌지만 헤지펀드는 아직 낯선 게 사실이다. 한국형 헤지펀드가 탄생한 지 16년이 지났지만 아직 글로벌 기준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금융시장 변동성이 높아진 시기에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헤지펀드의 영향력이 상당한 만큼 국내에서도 다시 주목할 시기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28일 국내 IB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헤지펀드 누적 설정액은 54조 4833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형 헤지펀드가 도입된 첫해 2000억원이었던 설정액은 2016년 약 5조원, 2019년 35조원으로 늘면서 급성장했지만 이후 속도를 크게 줄였다.
헤지펀드는 주식, 채권, 원자재, 파생상품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해 절대수익을 추구한다. 가격이 오르면 이익을 보지만 떨어지면 손해를 보는 ‘롱 포지션’, 가격이 내려가면 이익을 보고 오르면 손해인 ‘쇼트 포지션’, 전환사채·신주인수권부사채·교환사채에 투자하는 ‘메자닌’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때문에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록 헤지펀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헤지펀드 시장이 꾸준히 몸집을 키웠음에도, 아직 글로벌 시장 분위기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헤지펀드 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소극적인 배경에는 사상 최대 투자 사기극이었던 ‘매도프 사건’과 ‘라임사태’가 있다”고 짚었다. 특히 라임사태는 국내 최대 헤지펀드였던 라임자산운용에서 확산된 사건이라 시장에 준 충격이 컸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런 배경을 고려하더라도 국내 헤지펀드는 수익모델이 다양하지 못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동떨어져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코스닥 벤처 펀드나 공모주 펀드 등 기업공개(IPO) 우선배정 물량이 있는 펀드의 인기가 많아서다.
다만 지난 몇 년간 국내 증시가 부진하면서 공모주 펀드 수익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며 수익률을 낸 상위 몇 개 운용사가 전체 시장을 이끌 수밖에 없는 구조로 고착화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반대로 글로벌 헤지펀드 시장은 나날이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글로벌 헤지펀드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4조 5140억달러(약 6417조 1024억원) 달해 2022년 3조 8280억달러(약 5441조 8848억원)를 달성한 이후 꾸준히 우상향 중이다. 미국에서는 퍼싱스퀘어의 빌 애크먼, 브리지워트의 레이 달리오, 시타델의 켄 그리핀 등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월가 거물이라 일컬어지며 활약하기도 한다.
글로벌 출자자(LP)들 역시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비율을 늘리는 모양이다. 예컨대 글로벌 최대 국부펀드 규모 자랑하는 노르웨이 정부연기금(NBIM)은 최근 1조 8000억달러(약 2558조 8800억원) 규모의 석유 펀드 통해 헤지펀드에 처음으로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롱온리 포트폴리오를 보유하는 것이 자산을 불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NBIM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소규모 민간 운용사 수와 이들이 관리하는 자산이 모두 성장했다”며 “새로운 위탁 운용 방식을 통해 기존 장기 평균 수익률을 웃도는 성과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글로벌 대체투자시장 리서치 전문기관 프레킨의 올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공적 연기금은 장기간 전체 자금의 7~8%를 꾸준히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내 기관투자자, 특히 공적 연기금이 투자하는 비율은 0~3%에 불과하다. IB 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 대형 LP들의 대체투자 비율이 늘고 있다”며 “특히 헤지펀드에 투자하고 수익을 잘 내고 있는 만큼 우리도 글로벌 스탠다드 맞춰서 마음을 열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