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대우조선 청문회, 저축은행과의 데자뷰
“조선·해운 청문회, 전·현 정권 책임 공방에 시간 허비해선 안돼"
"기업 구조조정에 회계 투명성 높이는 전기 마련해야"
등록 2016-08-16 오후 5:07:14
수정 2016-08-16 오후 6:23:48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동아리 회장이 회원들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회비로 낡은 동아리방 책장을 수리했다. 들어간 회비가 한두 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회원들은 몇 명의 대표를 뽑아 회장에게 왜 낡은 책장을 수리하는데 회비를 썼는지, 차라리 책장을 버리거나 새 책장을 사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았는지를 따져 묻게 했다. 그리고 앞으로 회비가 많이 들어가는 일이 생기면 회원들에게 무슨 일에 얼마나 쓸 것인지 미리 이야기하도록 할 참이었다.
그런데 회장에게 따지러 간 몇몇 대표들은 전임 회장이 진작에 바꿨어야 할 책장을 계속 쓸만한 것처럼 이야기해 오면서 더 많은 비용이 들었으니 이 문제는 전임 회장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또 다른 대표들은 전임 회장의 책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문제는 지금 회장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니냐고 맞섰다. 대표들 간의 책임 공방으로 정작 회장에겐 무엇하나 따지지도 못하고 시간만 흘렀다.
2011년 부실 저축은행 사태로 열린 청문회가 그랬다. 애초엔 저축은행 부실을 초래한 정책과 감독 실패의 책임을 규명하자는 취지로 열렸지만 전·현 정권에 책임을 떠넘기는 데 시간만 보냈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하는 금융당국의 핵심 제도인 ‘적기시정조치’의 개념도 이해하지 못한 채 청문회장에 나오기도 했다. 언성을 드높인 국회의원이 금융당국자에게 아주 기초적인 개념을 묻고 이해하는 모습을 국민들은 생중계로 봐야 했다. 동아리는 싫으면 나가면 되지만 국가는 싫어도 나가기가 어렵고 저 생방송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대표로 있는 곳에서 세금을 내며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조선·해운 구조조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청문회가 시작부터 증인 채택 문제를 놓고 여야 간 샅바싸움을 하고 있다. 필요하면 누구든 출석해 진실을 밝혀야겠지만 이번에도 정작 논의돼야 할 것들은 놓치고 과거 정권과 현 정권 간의 책임 공방으로 흘러버릴까 우려스럽다. 정치 속성상 책임 공방이야 피할 수 없는 일일지라도 수조원의 혈세가 투입되고 수많은 사람의 일자리와 산업의 미래가 달린 중대한 일이 서별관회의라는 음지에서 불투명하게 처리되는 시스템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매듭을 지었으면 한다. 제발 ‘노무현 정권 때도 서별관회의는 있었지 않았느냐’라거나 ‘노무현 정권 때도 서별관회의는 있었으니 그건 문제 삼지 말고 그냥 넘어 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아직도 그때 그 시절 기준대로 살아야 하는 게 아니지 않는가.
수 조원대 기업 부실은 대통령이나 관료들이 만들 수 있는 것도 무능력한 경영자나 강성 노조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합리적 행동의 결과가 기업 부실로 나타날 수도 있는 시장 실패의 영역이다. 검찰 수사나 금융감독원의 회계감리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기업 부실이나 분식회계에 대한 책임 소재를 단지 며칠 동안의 청문회를 통해서 밝혀내겠다고 생각한다면 과욕이다.
왜 작년 하반기 삼정회계법인은 시장의 일반적인 예측과는 달리 과도하게 낙관적인 가정에 근거한 실사보고서를 작성했는지. 왜 금융당국은 이 실사보고서의 낙관적 가정을 그대로 수용하고 국책은행만이 독박을 쓰는 구조조정 방식과 4조 2000억원 규모의 유동성만 지원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파악했는지. 금융당국이 책임 회피를 위해 구조조정에 투입되는 자금 규모를 최소로 잡으려는 보신주의가 작동하진 않았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야 정확한 부실 규모를 파악하려는 회계법인의 독립적인 실사와 실사 결과를 기초로 우리 사회의 온갖 전문적인 인프라가 총동원되는 투명한 의사 결정 시스템이 들어설 자리가 생긴다.
회계를 뜻하는 영어 ‘Accounting’은 책임성을 뜻하는 ‘Accountability’에서 유래했다. 기업 구조조정과정에서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일은 결국 수 조원대 공적자금을 쓰는 일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책임지고 풀어나갈 일로 만드는 것이다. 조선·해운 청문회가 서별관회의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는 데만 성공하더라도 국회가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큰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