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VC 눈치 보느라 설문조사도 쉬쉬하는 벤처업계
등록 2017-09-01 오후 3:44:08
수정 2017-09-01 오후 3:44:08
[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돈 가진 사람이 최고라고 했던가. 이는 벤처 생태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투자를 받으려는 벤처기업과 이러한 기업에 대한 투자를 담당하고 있는 벤처캐피털(VC)의 관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벤처기업을 경제 성장의 한 축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관할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를 청에서 부로 지위를 격상시키고 이를 주체로 벤처기업을 성장시키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이를 위해 정부는 벤처기업 활성화를 위한 첫 단추로 VC 피투자 벤처기업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투자를 받는 기업의 투자 유치 시 애로사항을 듣고 정책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을 찾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정부와 설문조사 대상인 벤처기업들은 이번 설문조사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리고 있다. 혹시나 투자회사의 압력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그동안 투자사와 피투자사 간 분명한 ‘갑을(甲乙)’관계가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은 투자를 유치하면서 당황스런 조건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스타트업 투자를 계획한 한 VC는 해당 회사에게 인력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동종업계에 비해 인력구조가 커서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투자를 받아 사업을 확장해야 했던 이 기업은 눈물을 머금고 일부 직원을 정리해야 했다. 이런 요구를 들어줬음에도 아직 투자는 집행되지 않았다.
또 다른 스타트업은 투자에 대한 사전 협의를 하고 이를 전제로 한 사업 확장 계획을 다 세워놨는데도 마지막에 일방적으로 투자 계획을 접으면서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된 사례도 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막판에 이유도 모르고 틀어지는 경우도 많은데 웬만한 조건은 받아줘야 한다”며 “투자 받는 입장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게 많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설문조사 내용을 봐도 VC와 벤처기업 간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투자 손실에 대한 연대보증 요구 △높은 금리 △조기 상환 요구 △특정계약서 강요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대부분 모험자본이라는 VC의 이름값에는 어울리지 않는 조항들이다. 돈을 주는 입장에서 모험보다는 안정을 택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투자가 이뤄지더라도 투자를 받는 입장에서 벤처기업의 어려움이 존재한다”며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벤처들을 정책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올해 8300억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조성해 벤처기업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예년에 비해 4배가량 많은 역대 최대 수준이다. 이 자금은 대부분 VC를 통해 벤처기업에 투자된다. 하지만 VC와 벤처기업간 불공정 행태에 대한 문제 해결 없이는 이 자금이 벤처기업 성장을 위해 사용될 것이란 보장이 없다. 정부가 이에 대한 조사를 하기 시작한 만큼 공정한 벤처 생태계가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