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안혜신 지영의 기자] MBK파트너스가 사모펀드 역사상 전례없는 대주주 ‘사재출연’을 결정했다. 홈플러스 기업회생 신청을 두고 MBK 책임론이 거세지자 사모펀드 역사상 전례 없었던 사재 출연 카드까지 꺼내면서 비난 잠재우기에 나선 것이다.
문제는 규모다. 시장에서는 수백억원, 많아야 수천억원대 정도지 않겠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김병주 MBK 회장이 십수조(兆)원을 보유한 자산가로 알려진 만큼 1조원 이상은 내놓아야 비난 여론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사모펀드 초유의 ‘사재 출연’ 결정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MBK는 전날 입장문을 내고 홈플러스 대주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면서 사재출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사재출연 규모는 밝히지 않고 ‘어려움이 예상되는 소상공인 거래처 결제 대금’이라고만 언급했다.
이에 따라 예상보다 사재출연 규모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홈플러스가 매달 정산해야 하는 규모는 납품대금, 임직원 월급 등을 포함해 약 5000억원 수준이다. 서울회생법원이 자금을 집행하라고 승인한 작년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물품·용역대금은 3457억원이며, 임대점주 정산대금은 1127억원 수준이다.
 |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사진=MBK파트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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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는 이날 오전 기준 총 상거래채권 지급액이 3510억원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밀린 대금과 공익 채권, 회생개시 후 상거래채권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다.
따라서 12월부터 2월까지 밀려 있는 자금은 일정 부분 지급이 됐을 것으로 추산된다. MBK 측이 “어려움이 예상되는 소상공인 거래처에 신속히 결제대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마련하겠다”고 언급한 만큼 실질적인 사재 출연 규모가 작게는 수백억, 많아도 수천억에 그칠 수도 있다는 예상이 가능하다.
MBK의 이번 사재출연 결정은 이례적이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당시 태영그룹 대주주 일가가 484억원의 사재를 출연하는 등 그간 기업이 어려울 때 그룹의 오너 일가의 사재출연은 있었다. 그러나 사모펀드가 인수기업을 위해 사재를 출연한 경우는 전무했다. 인수 기업의 실적이 좋지 않다고 사모펀드가 이를 구제해야 할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MBK가 이번 사태를 위중하게 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사업을 계속해야 하는 MBK 입장에서는 사재 출연밖에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면서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상당 규모를 내놓아야 할 텐데 시장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규모에 쏠린 관심…“1조원은 돼야”문제는 MBK를 향한 비난 여론이 예상보다 거세다는 점이다. 따라서 분위기 반전을 위해서는 김 회장이 예상보다 큰 규모의 사재를 내놓아야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김 회장은 상당한 자산가로 알려져있다. 지난 2023년 포브스 선정 한국 최고 부자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 추정된 김 회장의 자산은 97억달러(약 14조원) 수준이다.
그동안 자선사업으로 서울 ‘김병주 도서관’ 건립을 위해 300억원을 출연했고, 지난 2022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1000만달러(약 145억), 작년에는 모교인 미국 하버포드대학교에 2500만달러(약 362억원)를 기부한 바 있다.
이번 사재출연 규모가 최소 이 수준을 넘어서는 것은 물론 1조원은 돼야 거센 비난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김광일(왼쪽) 홈플러스 부회장과 조주연 홈플러스 사장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기업회생절차와 관련, 입장을 밝히기에 앞서 허리숙여 사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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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출연한 사재로 소상공인 거래처 결제대금 뿐만 아니라 신영증권을 통해 매각한 기업어음(CP), 전자단기사채(전단채) 등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홈플러스 회생개시 전인 지난 3일 기준 CP·카드대금 기초 유동화증권(ABSTB·자산유동화 전단채)·단기사채 등 단기채권 판매잔액은 594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개인 투자자에게 팔린 규모는 절반에 가까운 2075억원으로 파악되고 있다.
소상공인 결제대금에 이 금액까지 더하면 최소 1조원의 자금은 내놓아야 어느 정도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소상공인 결제대금을 제외한 전단채 등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자금만 5000억원 가량”이라면서 “사재출연도 전단채 등 문제에 있어서 형사사건까지 가는 것을 막기 위해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시장 최대 관심사는 사재 출연 규모”라면서 “최종 결정을 봐야하겠지만 전단채를 문제 해결하는 정도 수준으로 내놓아서는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한편 이날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홈플러스 물품구매 유동화 전단채 피해자 긴급 간담회’에 참석해 “상거래채권, 전단채 문제 해결, 경영정상화를 위한 투자 등을 생각하면 2조원 정도의 (김 회장)사재 출연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