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변한다. 오랜 기간 동안 대주주들의 의사 결정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움직인다. 삼천리그룹을 반세기 넘게 지탱시킨 힘은 ‘피보다 진한’ 이씨-유씨 가(家)의 동업경영이다. 하지만 세월의 힘 앞에서 ‘두 가족’이 계속해서 ‘한 울타리’에 있게 될 지 시장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연결고리들이 하나 둘 끊어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명패 뿐인 비상무이사
 | 삼천리 이만득 회장 |
|
2009년 12월
삼천리(004690)는 삼탄의 유상감자에 참여, 삼탄 지분 10.2%(26만6429주)를 1408억원(주당 47만5000원)에 매각했다. 이듬해 1월에는 삼탄인터내셔널의 유상감자에 응해 지분 15.0%(42만2280주)를 420억원(주당 9만9400원)에 넘겼다. 비슷한 시기 삼탄은 시간외매매를 통해 삼천리 지분 6.5%(26만4693주)를 이씨-유씨 일가들에게 균등하게 매각했다. 이 거래로 장기간 삼천리 계열을 지탱해왔던 삼천리-삼탄-삼탄인터내셔널 상호출자 관계는 해소됐다.
이를 놓고 진통도 있었다. 올 3월 정기주총때 소액주주들이 저가매각 의혹을 제기했던 것. ‘동업’이 갖는 독특함 탓에 삼천리그룹 지배구조에 대한 시장의 높은 관심을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공동 경영의 끈도 느슨하다. 이만득 삼천리 회장은 현재 삼탄의 등기임원으로 등재돼있다. 하지만 상시적 업무(常務)를 보지 않는 ‘기타비상무이사’일 뿐이다. 유상덕 삼탄 회장도 마찬가지다. 삼천리의 무보수 비상무이사다. 서로 경영에 간섭하지 않고, 이씨 집안은 삼천리 계열, 유씨 집안은 삼탄 계열을 독자경영하고 있다.
이로 인해 양가의 동업 정신은 이제 인적 지분관계 정도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동일지분 원칙으로 나타난다. 삼천리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은 32.4%다. 양가가 각각 16.2%씩(65만6371주) 균등하다. 단 한 주의 오차도 없다. 이씨 일가에서는 이 회장이 8.4%, 이 회장의 조카인 이은백(39) 삼천리 전무가 7.8%를 보유중이다. 유씨 일가는 유 회장이 12.3%, 여동생 유혜숙 씨가 3.9%를 갖고 있다. 삼탄과 삼탄인터내셔널 역시 두 집안이 각각 33.4%, 35%씩을 소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쟁자 없는 독주이 회장이 삼천리 회장에 오른 때가 지난 1993년. 2대 경영 체제로 20년이 흐른 지금 삼천리는 3대 경영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터를 닦고 있다.
진정한 기업 승계는 경영 승계와 지분 승계가 함께 이뤄지기 마련이다. 이씨 일가 3세들 중 창업주의 장손인 이 전무 만큼 ‘1인자’ 자리에 다가선 이는 찾아볼 수 없다. 이 회장은 은희, 은남, 은선 씨 등 세 딸이 있는 데 모두 회사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삼천리 지분도 전혀 없다. 반면 미국 페퍼다인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한 이 전무는 2004년 입사 이래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있다. 기획 및 사업개발 담당에서 전략기획부 실장을 거쳐 지난해 12월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하며 현재 경영지원본부 해외사업 부문을 담당하고 있다.
2010년 1월 삼탄의 삼천리 지분 6.5% 매각 당시 이 전무의 입지를 엿볼 수 있다. 삼탄은 당시 이씨-유씨 일가에게 균등하게 분할 매각했는데 이씨 일가에서는 이 회장과 이 전무에게 각각 1.6%를 넘겼다. 이 전무는 3세들 중 유일하게 삼천리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개인주주로는 3대주주의 지위를 갖고 있다.
삼천리 내부에서 전하는 일화도 있다. 이 회장은 어느 날 이 전무를 가리키며 “난 아들이 이미 있다”고 주위에 말했다고 한다. 3대 경영권이 무리없이 이 회장의 조카에게 넘어갈 걸로 관측되는 이유다.
삼천리그룹 이씨-유씨 일가의 분가는 복잡하지 않다. 옛 LG그룹의 구씨-허씨 일가와는 양상이 다르다. 삼천리와 삼탄, 삼탄인터내셔널 지분을 맞바꾸면 간단히 해결된다. 향후 현실화됐을 때 이 전무 중심의 3대 경영시대의 윤곽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이 회장 자리에 오른 때는 37세였다.
기획팀=신성우 부장·김세형 차장·임명규·민재용·하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