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형수 기자] “주식 시세가 이렇게 형편없이 쌀 수는 없다. 회사 경영상황을 누구보다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나를 믿고 투자하라”
유럽 재정위기와 글로벌 경기 둔화 여파로 증시 침체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투자자들을 향한 대기업 임원들의 외침이 주식시장에 메아리치고 있다. 기업가치에 대한 자신감과 책임경영 의지의 표현이다. 경영활동 외에 자사 주식의 매수주문을 내는 것도 어느덧 대기업 임원들의 업무가 됐다.
8일 금융감독원 및 증권업계에 따르면 63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상장 계열사 중 7월 이후 임원들이 자사주식을 사들인 곳은 21개사에 이른다. 임원수도 68명이나 된다.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섰다. 차석용 LG생활건강 대표이사 부회장은 지난달 31일 자사주 1000주를 사들였다. 5억8000만원어치나 된다. 매입 시기는 LG생활건강이 올 2분기 실적을 발표한 이후다. 당시 증시전문가들은 내수경기 침체로 LG생활건강의 성장속도 둔화가 염려된다고 지적했지만, 차 대표는 자사주 매입을 통해 성장성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최근 SK그룹에 인수된 SK하이닉스 권오철 SK하이닉스 대표는 주가가 연일 하락하던 지난달 말 자사 주식이 헐값 평가를 받고 있다는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1억원이 넘는 사재를 털어 5000주를 샀다. 이후 SK하이닉스는 올 2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영업이익 228억원으로 흑자전환 소식을 알렸다. 주가는 실적 발표 이후 10% 이상 올랐다.
대기업 임원들의 자사주 취득 열기는 김신 삼성물산 대표를 비롯, 김인석 LG 전무, 조영태 삼성테크윈 상무, 오장수 LG화학 부사장, KT 서홍석 부사장, 김동현 코오롱글로벌 부사장 등도 예외가 아니다. 웅진케미칼은 박찬구 대표를 비롯해 임희석 상무, 임우규 상무 등 8명의 임원이 자사주 매입에 뛰어들었다.
금융권도 상황은 비슷하다. 특히 은행권의 경우는 최근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에 수익성 감소라는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서진원 신한은행장이 신한금융지주 1000주를 사들인 것을 비롯, KB금융지주 함상문 사외이사, 황덕남 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 등은 자사주에 대한 변치 않는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증시 침체로 증권사들의 시름이 깊어가는 가운데 동양그룹 계열 동양증권은 지난달 말 이승국 대표 등 무려 36명이나 되는 임원들이 일제히 자사주를 샀다. 적게는 180주, 많게는 770주를 매입했다. 동양증권 관계자는 “임원들이 책임 경영을 하겠다는 차원에서 자사주를 매입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대기업 임원들의 투자자들에 대한 외침에 시장도 신뢰를 보내고 있다. 산업 현황과 기업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임원들이 뜻을 모아 자사주를 매입하면 신뢰도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조윤남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의 경우는 임원의 자사주 매입과 매도를 투자의 중요한 신호로 해석한다”며 “그만큼 ‘자신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