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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의 가치`
등록 2011-11-03 오후 1:34:30
수정 2011-11-03 오후 1:34:30
[이데일리 김유정 기자]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Their sentiments are completely understandable.)."
비크람 팬디트(Vikram Pandit) 씨티그룹 CEO의 말이다.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에 대한 포춘(Fortune)지와의 인터뷰에서 팬디트는 참담한 심경을 이렇게 전했다. 월가에 대해 시민들의 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면 시위대와 기꺼이 대화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친 그는 뉴욕 어퍼웨스트사이드(Upper West Side)의 1790만달러(약 1969억원)짜리 아파트로 돌아갔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직전인 2007년에 250만달러의 보너스와 스톡옵션을 받아 사들인 방 10개짜리 호화 아파트 말이다.
거대 금융자본에 대한 시민들의 외침을 들으러 굳이 뉴욕까지 갈 필요는 없다. 요즘 농협과 우리 농민들의 모습을 보면 월가 점령 시위의 단면이 보이는 듯하다. 정부가 공공 비축미를 반값에 내놓으면서 쌀값 폭락을 조장하고 있다는 농민들의 규탄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농가를 보호해야 할 농협이 정부와 함께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다. 농협이 비축미를 싼 값에 판매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쌀값 후려치기`의 주범으로까지 몰리는 분위기다.
농협의 정체성을 놓고 보면 월가 시위와 닮았다고 하는 이유가 더욱 분명해진다. 농민조합원들이 읍·면 1000여개의 회원조합을 세우고, 이들 회원조합이 출자해 농협중앙회를 설립했으니 농협은 태생적으로 농가의 이익을 지켜야할 정체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직원들 대부분이 은행원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금융회사이기도 하다.
자산규모 300조원, 국내 은행권 4위인 농협(2010년 말 기준)의 임금 수준은 `금융회사`라는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해준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는 농협중앙회장의 연봉이 12억원이냐 7억원이냐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한 국회의원이 농협중앙회장의 연봉이 12억6000만원이나 된다고 주장했는데 농협측은 `터무니없다`며 `그저 7억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전국 조합장중 선거로 뽑히면서 상근하지 않는 `비상근 명예직`치고는 7억원도 여전히 놀랄만한 임금이다.
또 농협중앙회 직원 중 1억원이상 연봉을 받는 직원이 지난해만 660여명으로 그 수가 전년대비 158%나 증가했고, 회원조합 내 억대 연봉자들도 3000여명으로 전년보다 40%나 늘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농협은 그간 미뤄오던 올해 성과급도 미리 지급했다. 농림수산식품부의 조사에 따르면 작년 농가 평균소득이 3212만1000원이었으니 농협중앙회장 연봉이면 농가 23가구(연봉 7억원 가정시)를 1년간 먹여 살릴 수 있는 셈이다. 시위의 본질만 닮은 것이 아니라 탐욕마저도 너무나 닮아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칼럼을 통해 팬디트 CEO가 시위대와 마주앉아 대화한다고 해서 절대로 신뢰를 얻지는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팬디트는 억울할지도 모른다. 금융위기로 씨티그룹이 정부의 구제금융을 지원 받으면서 연봉 1달러를 받았던 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1년만에 175만달러라는 경이로운 연봉 인상폭을 기록한 점도 논외로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우리 농민들의 쌀값 보장 규탄 시위가 갈수록 거세지는 지금, `같이의 가치`라는 농협의 슬로건은 허황되게만 들린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제5호 마켓in`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5호 마켓in은 2011년 11월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170, bond@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