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기업 편의만 생각한 공시·회계 개선안…투자자 보호는 `뒷전`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공시·회계제도 개선방안' 분석
"월급통장 모두 보여주던 남편, 이젠 중요도 선별해 아내에게 보여주는 식"
"상장하면 수백억 조달하는데…감사비용 좀 줄이려다 회계 투명성 악화"
등록 2016-05-08 오후 12:00:02
수정 2016-05-08 오후 12:00:02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공시, 회계 부문에서 제기된 불편사항을 ‘기업의 눈높이’에서 개선함으로써 활력있는 기업 활동을 지원하고자 함”
8일 금융당국이 발표한 ‘공시·회계제도 개선 방안’은 보도자료에도 썼다시피 기업의 눈높이에 맞춰졌다. 무게 중심이 기업으로 쏠리면서 투자자, 회계사, 회계 정보 이용자들의 요구는 고려되지 않았다.
투자자의 이해를 침해하는 대표적인 내용이 기업이 직접 분·반기보고서 공시 사항 중 투자 판단에 영향이 적다고 판단되는 내용이나 분·반기 중 변동 사항이 적은 내용을 생략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기업이 경영 정보를 외부에 공시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기업이 감추고 싶은 내용도 공개하도록 해 투자자들이나 회계 정보 이용자들의 판단을 돕는다. 그러나 투자 판단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투자자가 판단하지 않고 애당초 기업이 판단하도록 해 기업에게 유리한 내용만 공시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 것이다. 남편이 월급통장 거래 내역을 모두 보여주지 않고 남편이 판단하기에 중요한 정보라고 생각되는 것만 아내에게 보여주는 식이다.
금융당국이 생략을 검토하는 항목은 △배당에 관한 사항 △생산능력·생산실적·가동률 △중요 시설·설비 △향후의 주요 투자 계획 △연구개발활동 △대손충당금 설정현황 △재고자산 현황 △사외이사의 전문성 △직원의 현황 △타법인 출자현황 등이다.
이에 대해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공장가동률이나 설비투자 현황, 재고자산 현황 등은 기업의 향후 수익성을 예측하는데 매우 중요한 데이터인데 이런 항목을 왜 ‘투자 판단에 영향 높지 않다’고 보고 있는지 동의할 수 없다”며 “게다가 기업의 재무 상태와 업황 등에 따라 분·반기 변동 가능성도 매우 높아질 수도 있는데 이를 일괄적으로 변동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공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산업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칠 중요 사항은 반드시 기재하도록 하고, 만약 기재하지 않으면 공시 위반 혐의를 조사해 사후 조치하겠다”고 해명했다.
상장 예정 기업에 대한 지정 회계감사에도 경쟁의 원리를 적용, 감사비용 부담을 줄여준 것도 투자자 보호 원칙이 후퇴한 결정으로 볼 수 있다. 회계감사 시장은 감사 품질이 높을수록 기업의 선호도가 낮아지는 역선택이 일반화한 특수한 시장이다. 더 많은 회계사와 외부전문가를 투입해 더 투명하게 회계감사를 실시할수록 기업 입장에선 비용은 많이 들고 시장에 공개해야 할 내부 정보는 더욱 늘어난다. 이 때문에 증시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에는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해 더욱 엄격하게 감사를 받게끔 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정 감사를 받는 상장 예정기업의 평균 감사보수는 지난해 기준 1억 1200만원 정도다. 여기에 경쟁의 원리를 적용해 감사보수를 일정 수준 낮춘다는 것은 그만큼 감사에 투입되는 회계사나 감사투입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감사보수가 낮아지면 회계사 3명이 감사하던 기업을 회계사 2명이 감사를 하게 된다는 것으로 그만큼 감사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증시에 상장하면 수백억원의 자금도 끌어올 수 있는데 고작 몇천만원의 감사보수조차 감당이 안 되는 기업을 상장하도록 하는 것이 자본시장을 위해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