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모두를 적으로 만들기보다는 앞으로의 실적을 위해 아군을 남겨두는 게 더 현명하다. IB증권사들은 생존전략으로서 짝짓기를 선택한다. 이들의 짝짓기가 마냥 낭만적이지 않은 이유다. 무한경쟁이라는 큰 틀 속에 얽혀있는 이합집산(離合集散)의 이해관계, 바로 증권사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범현대·범LG "우리가 남이가" 범현대 계열 증권사들의 서로 챙겨주기는 지난해 유난히 도드라졌다. 현대백화점 그룹 계열사인 현대HCN 상장공모 때 현대증권은 공동주관사, 하이투자증권과 HCM투자증권은 인수단으로 참여했다. 하이투자증권과 HMC투자증권은 전체 공모주 2200만주 중 220만주씩를 인수했고 각각 1억3000만원 정도의 수수료를 받았다. 현대증권이 대표주관사로 참여한 현대홈쇼핑도 마찬가지였다. 하이투자증권과 HMC투자증권이 공동대표주관사를 맡으면서 75만주씩을 인수했다. 2400억원 규모의 대형 딜이었던 만큼 이들 증권사는 각각 9억원이라는 적지 않은 수수료를 챙겼다.
어차피 인수단으로 넘겨 줄 거 이왕이면 남 좋은 일 시키는 것 보다는 내 사람 챙겨주는 것이 낫다. 특히 비상장사를 계열사로 많이 보유한 증권사들의 경우 이러한 동맹관계가 심심찮게 실적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룹끼리의 인연으로 맺어진 이 같은 공생관계는 점차 고착화되는 분위기다. LIG투자증권과
우리투자증권(005940)의 관계도 이와 유사하다. 지난해 11월 이뤄진 녹십자의 63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는 우리투자증권과 LIG투자증권이 공동대표주관사로 참여했다.
무엇보다 범LG가(家)라는 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리투자증권은 지난 2005년 LG투자증권이 우리증권을 인수합병하면서 새롭게 출범했다. LG투자증권은 2003년 LG카드의 부실화로 채권단으로 넘어가면서 계열분리됐다. 또한 LIG투자증권은 LG그룹의 방계인 LIG그룹의 자회사로 지난 2008년 설립됐다.
더욱이 LIG투자증권은 IB업무 강화를 위해 지난해 조희준 전 우리투자증권 IB그룹장을 IB사업본부장으로 영입했다. 이 때 우리투자증권에 있었던 팀장급 등 7~8명의 IB 담당자들도 함께 자리를 옮겼다. 조희준 본부장은 과거 LG투자증권을 시작으로 25년의 세월을 줄곧 우리투자증권과 함께 했다. 이러한 `인연의 끈`은 LIG투자증권이 공동주관사로 참여하는데 큰 일조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녹십자의 유상증자는 LIG투자증권이 조직개편을 한 이래 주관사로 참여한 첫번째 사례가 됐다.
오고 가는 정 속에 꽃 피는 실적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다.’ 영업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IB업계에서도 기본적인 상도의라는 것이 있다.
SK증권(001510)과 한국투자증권의 잇따른 동행에 숨겨진 남모를 사연이기도 하다.
지난 한해 동안 SK증권이 맡은 IPO 거래는 7건이었다. 지난해 초 우노앤컴퍼니의 IPO 단독 대표주관사를 맡은 것을 제외하면 6건 모두 인수단으로 참여했다. 그 중 한국전자인증, 액트, 인텍플러스는 한국투자증권이 주관회사를 맡은 곳이었다. 특히 한국전자인증은 공모규모가 20억원도 채 안됐다. 그럼에도 한국투자증권은 SK증권을 인수단으로 끌어오면서 3억원이라는 얼마 안 되는 수수료를 쪼개줬다.
둘의 인연은 지난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투자증권은 당시 SK그룹의 계열사인
SK C&C(034730)의 유가증권시장 상장공모의 공동주관사로 참여했다. 전체 1500만주 가운데 540만주를 인수하고 20억원의 수수료를 챙겼다.
증권인수 업무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그룹 계열사 증권사는 그룹내 기업들의 상장공모에서 공모주를 인수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SK증권은 SK C&C의 주관사는 물론 인수단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IB업계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SK C&C는 주관사와 인수단을 선정하면서 이들 증권사들이 향후 SK증권에게 일정 부분 이득을 돌려줄 수 있도록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투자증권이 SK증권을 계속해서 인수단으로 챙겨주는 이유에는 이러한 속사정이 숨겨져 있다.
SK C&C의 인수단으로 참여한
대신증권(003540)도 예외는 아니다. 당시 대신증권은 180만주를 인수하면서 7억원가량의 수수료를 챙겼다. 대신증권도 지난 한해동안 자신이 대표주관사를 맡은 상장공모에 SK증권을 챙기면서 보답을 톡톡히 했다. SK증권은 웅진에너지와 스타플렉스, 케이티롤 상장공모 때 인수단으로 참여해 수수료를 챙겼다.
대우증권(006800)과 IBK투자증권도 지난 한해 동안 끈끈한 우정을 과시했다. IBK투자증권은 지난해 첫 대표주관사를 맡은 아세아텍을 시작으로 전체 8건 중 6건을 대우증권과 함께 했다. 물론 IBK투자증권도 그에 대한 답례를 잊지 않았다. IBK투자증권이 대표주관사로 참여한 코라오홀딩스 상장공모 때 대우증권은 공동주관사를 맡았다.
이러한 인연의 중심에는 임기영 대우증권 사장이 있다. 임 사장은 IBK투자증권 사장 출신으로 지난 2009년 6월 대우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때 IBK투자증권에서 IB 요직을 담당했던 대규모 임원들도 함께 움직였다.
박동영 전 IBK투자증권 부사장은 글로벌 파이낸셜마켓 사업부 총괄전무로, 김국용 전 IBK투자증권 자기자본투자사업부 부장은 자금시장 고유자산 운용부문 총괄전무로 임명됐다. 임 사장의 남다른 친정 챙기기는 신생 증권사들 중에서도 유독 IBK투자증권을 돋보이게 했다. 대우증권이 IB업무 경험이 부족한 IBK투자증권의 든든한 구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
내 편 만들기…“옜다. 인수단!” 인수단 구성은 대표주관사와 비교해 봤을 때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영업이 가능한 증권사라면 누구라도 올 수 있다. 인수단의 업무비중이 높지 않기 때문에 인수단 선정은 대체로 보은의 성격이 짙다. 은행 계열사를 두고 있는 몇몇 증권사들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이 때문이다. 발행사들이 주거래 은행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인수단을 먹잇감으로 던져주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표주관사의 입김도 크게 작용할 수 있다. 발행사 입장에서는 전체 수수료가 정해져 있어 인수단이 많아도 상관없다. 엄밀하게는 대표주관사만 손해다. 인수단을 끌어오면 끌어올수록 본인에게 떨어지는 수수료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증권사들은 충분히 인수할 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편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딜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많은 증권사들이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열사, 인맥 등 모든 것을 동원해 영업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계열사들의 이해관계도 얽혀 있어 딜 이외의 것들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제2호 마켓in`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2호 마켓in은 2011년 2월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381, bond@edaily.co.kr] ▶ 관련기사 ◀☞우리證, 3Q 트레이딩 빼면 양호한 실적..`목표가↑`-한국☞우리투자證, 작년 3Q 순익 21억..전년비 흑자전환☞[마켓in][2010 DCM]④군웅할거 시대의 붕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