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성선화 기자] “현장의 심사역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과거 벤처 버블을 답습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투자 가치가 있는 벤처기업을 선발하는 작업이 핵심이다.”
이번주 한국벤처투자의 최종 모태펀드 운용사 선정 최종 발표를 앞둔 24일 서울 여의도 한국성장금융 본사에서 만난 이동춘 대표를 만나 국내 벤처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들었다.
한국벤처투자가 매년 집행해온 출자금은 5000억~600억원 내외다. 정부 예산에서 집행되는 만큼 전년도 예산 계획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지난 2010년 이후 꾸준히 집행돼 온 평균 금액이다. 이번 모태펀드는 추경까지 포함해 1조3000억원 가까이가 된다. 예년대비 5배에 달한다. 일단 자금 집행규모에 대해 이 대표는 국내 시장이 소화할 수 있는 규모에 비해 많아 보일 수 있지만 “어떻게 투자 되느냐”가 관건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이번 모태펀드 집행이 국내 VC업계 생태계를 바꿀 변곡점으로 해석했다. 이 이사장은 “운용역들의 자발적인 자정 노력과 함께 제도적 개선이 뒷받침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한꺼번에 풀린 자금으로 인해 운용역들이 지나치게 높은 밸류에이션으로 기업에 투자할 경우다. 이 경우 시장가격 왜곡이 발생할 수 있는 향후에 투자 회수가 힘들어진다. 그는 “심사역들이 지나치게 투자를 서둘러선 곤란하다”며 “초기에 많은 출자금을 소진하려는 욕심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또 한 가지 예상되는 시장 혼탁 상황은 심사역 유출로 인한 출혈 경쟁이다. 현재 시장에선 가뜩이나 VC 심사역이 부족한데 모태펀드 선정 이후 운용역 빼가기 전쟁이 일수도 있다. 현재 모태펀드 선정 기준에는 핵심 운용역 3명 중 1명은 선정 이후 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모태펀드 선정 운용사로 심사역들이 대거 이동할 경우 기존 운용 펀드에도 지장이 생길 수 있다. 이 대표는 “능력이 검증된 운용사 선정과, 운용시 심사역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그에 따른 성과를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개선돼야 할 제도적 인프라는 지나치게 세부적으로 구분된 법 체계다. 이스라엘과 중국 등 해외 국가들에서 벤처시장이 활성화 된 이유는 오히려 이 시장을 옥죄는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벤처투자가 우리보다 더 활성화 된 이유는 법적 규제가 적어서다. 중국의 경우도 정부가 나서 벤처를 활성화하기 위해 설립한 R&B 펀드는 정부의 지나친 간섭으로 실패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면 글로벌 투자자들이 해외에 법인을 설립해 투자를 하는 ‘조세회피처(offshore)’ 투자는 성공적이란 평가다. 국내 투자자들 역시 R&B 펀드가 아닌 조세회피처 투자를 선택하고 있다. 특히 해외의 경우 심지어 플라이빗에쿼티(PE)와 벤처투자(VC)에 대한 구분도 없다. 펀드가 투자하는 대상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이 대표는 “국내는 VC는 물론 PE에서도 구조조정 PE 등 세부 구분이 많다”며 “자본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법 테두리의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창업 이후 데스밸리(3~4년 추가 투자를 받지 못해 부도)를 넘기려면 국내도 한 기관 투자자가 단계별로 이어서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존속기간, 소진 등의 문제로 하나의 펀드가 성장과정에 따라 시리즈로 투자하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 이 이사장은 “국내도 한 기업의 성장 과정에 따라 시리즈로 이어져 투자하는 문화 정착이 필요하다”며 “데스밸리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국내 벤처, 중소 기업들이 데스밸리를 넘기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한국성장금융은 이같은 국내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번 모태펀드 선정 이후 다음 투자 시기가 도래하는 2~3년 후 또다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대표는 “지금 당장은 모태펀드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올해 남은 예산 집행도 모태펀드와 전혀 다른 섹터로 겹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출자 시기를 조금 늦춰 내년초로 예상하고 있다. 이어 그는 “모태펀드 활성화가 한국성장금융의 확대와도 직결된다”며 “지금 시기가 국내 벤처시장 생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타이밍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