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옥시는 창고에 보관된 가습기 살균제를 폐기했을까?’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지켜보며 든 생각입니다. 검찰이 옥시의 전·현직 외국임 임원을 소환해 유해성 검사를 소홀히 하고 제품을 판 경위를 조사하고 있지만 지금도 옥시의 창고에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옥시는 지난 2011년 말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합니다. 유한회사는 소수의 사원이 출자금액만큼만 책임을 지는 구조로 주식회사와는 달리 회사 재무제표를 공시할 의무가 없습니다.
만약 옥시가 지금까지 주식회사 형태를 유지해 재무제표를 공시했다면 우리 국민은 무엇을 알 수 있었을까요.
우선 완벽하진 않지만 옥시가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를 전량 폐기했는지, 그 정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통회사가 제품에 심각한 결함이 있어 이를 전량 폐기하면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관련 재고자산을 몽땅 시장에 내다 팔 수 없다고 보고 평가손실로 처리해야 합니다.
또 제품을 생산하던 기계장치도 더는 수익을 추구할 수 없게 됐기 때문에 유형자산 손상차손으로 손실 처리해야 합니다. 재고자산과 유형자산의 증감 현황을 살펴보면서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를 폐기했는지, 아니면 그대로 창고에 보관하고 생산 활동도 계속해서 하고 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손실처리하는 자산 규모가 티도 안나게 작다면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지요)
또 영국회사 옥시가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인 돈을 본국으로 얼마나 송금하는지도 볼 수 있습니다. 옥시가 주식회사였던 지난 2010년 감사보고서를 보면 중간배당으로 270억원을 대주주 레킷벤키저피엘씨(Reckitt Benckiser plc)에 송금했다고 나와있습니다.
당시 한 해 동안 벌어들인 당기순이익 175억원보다 더 많은 금액을 고배당한 것이지요. 또 레킷벤키저 싱가포르 등 관계회사와 경영자문 계약을 맺고 72억원을 자문 수수료로 지급했고 관계사들에 지급한 로열티도 86억원에 달합니다. 특수관계자들에게 빌려준 대여금과 이자도 253억원에 이릅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지난 2012년부터 옥시를 상대로 손해배당청구 소송을 냈는데요, 이런 소송 관련 사항도 재무제표 주석에 기록해야 합니다. 옥시 입장에서는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할 만큼 회사가 어렵지도 않았기 때문에 기업의 내부 정보를 공시해야 하는 주식회사 형태를 굳이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리라고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식회사를 유한회사로 전환한 곳은 옥시 뿐만이 아닙니다. 루이뷔통코리아와 구찌코리아 등 외국계 명품 회사들과 애플코리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등 외국계 IT회사들도 2010년을 전후로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했습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10년 1만 7000여개에 달한 유한회사는 2014년에 와서 2만 5300개로 크게 늘었습니다.
금융위는 유한회사는 보통 소규모 회사들이 갖는 기업 형태인데 이렇게 총자산 규모가 1000억원이 넘는 기업이 유한회사로 전환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덩치가 덩치인 만큼 이해관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데도 공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봤습니다. 옥시 사태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이 때문에 2013년부터 유한회사에도 회계감사를 의무화하는 작업이 추진된 겁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금융위의 이런 계획은 올해 3월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에 막혀 더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규개위는 유한회사는 선진국에서도 공시의무가 없는데 우리나라에서만 공시의무를 지우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고 본 겁니다. 그래서 기업 공시는 면제하되 회계감사만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결정됐습니다.
물론 모든 유한회사에 재무제표 공시의무를 지우는 것은 과도한 규제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자산규모가 1000억원이 넘고 한 해 배당과 자문수수료, 로열티 등으로 수백억원을 본국에 송금하는 옥시와 같은 유한회사에까지 공시의무를 부여하지 않는 것. 우리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엄청난 초대형 유한회사를 이렇게 불투명한 상태로 놔두는 것이 적절한지는 생각해볼 일입니다.
정부 입법으론 이제 불가능해졌으니 20대 국회가 열리면 투명한 시장을 위해 국회의원들이 나서주기를 바랍니다. 규개위는 의원입법안은 막지 못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