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박소영 기자] “한국 로펌이 해외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건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연적인 방향입니다.”
포화상태인 국내 법률시장을 벗어나 해외로 눈을 돌리는 국내 로펌들이 상당하다며 국내 법조계 관계자가 전한 말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국내 로펌의 해외 진출은 낮은 수임료, 법률 서비스에 대한 현지의 저조한 인식 그리고 부족한 인적 인프라라는 걸림돌이 컸다.
특히 현지에서 유능한 변호사를 확보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고, 어렵사리 데려온 현지 변호사가 언어·문화 장벽으로 한국 클라이언트를 직접 응대하는 것도 어려웠다.
이 가운데 업계 후발 주자이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무서운 속도로 장악력을 넓히며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로펌이 있어 시선을 끌고 있다. 주인공은 ‘법무법인 디엘지(DLG)’로, 최근에는 태국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디엘지는 송무에 강한 현지 로펌 ‘AP 로 오피스(AP Law Office)’와 함께 스핀오프 방식의 합작법인(JV)이라는 독자적인 구조로 태국법인을 세웠다. 이로써 자문뿐 아니라 현지 송무 역량과 인력을 유연하게 활용하게 됐다. 현지 로펌의 구조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양측이 전략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방식의 JV가 만들어진 셈이다.
디엘지 태국법인은 아피왓 낙참눈 대표 변호사와 동남아 전문가인 유정훈 파트너 변호사가 이끌고 있다. 아피왓 낙참눈 변호사는 송무 업무를 총괄한다. 유정훈 변호사는 재무·조직 운영 전반의 총괄과 함께 한국·태국에 진출하는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자문 업무와 영업 활동을 주도한다.
유 변호사는 지난 16년간 해외 법률자문 업무를 수행한 ‘동남아 전문가’로 디엘지에서 아시아프랙티스그룹장도 겸임하고 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그를 서울 서초동 디엘지 본사에서 만나 현지 자본시장의 분위기, 국내 투자은행(IB) 업계가 진출하기에 어떤 환경인지, 현지 진출 시 유의할 점은 무엇인지를 들어봤다.
 | 유정훈 법무법인 디엘지 태국법인 파트너 변호사 겸 아시아프랙티스그룹장이 태국에서 글로벌 기업이 세우는 자금조달과 투자 회수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법무법인 디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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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M&A 활발한 동남아 자본시장 중심지 ‘태국’국제정세 변화로 인해 국내 기업이 주로 공략했던 미국과 중국에서 사업을 확장하기에 점점 더 많은 제약이 생겨나고 있다. 새로운 시장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며 아세안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는 곳도 적잖다. 특히 태국과 인도네시아는 인구 규모와 경제 성장률, 도시화 수준을 고려할 때 소비시장으로 진출하기에 매력적인 국가로 꼽힌다.
이 가운데 현지 관계자들은 태국을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로 ‘동남아 국가 중 자본시장이 상대적으로 잘 발달된 나라’라는 점을 꼽는다. 기업공개(IPO) 관심도가 높아 이를 통한 자금조달과 투자 회수 전략이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어서다. 유 변호사는 “태국에 진출하려는 기업이라면 단기적 운영 전략뿐 아니라 중장기적인 구조 설계가 중요하다”며 “초기 투자 구조나 지분 배분, 경영권 확보 방안 등도 IPO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유 변호사에 따르면 태국은 인수·합병(M&A) 시장도 발달한 나라다. 프랜차이즈, 핀테크와 기술 기반 산업에서 활발한 변화가 진행 중이어서다. 이미 태국에서 터를 잡은 지 오래된 일본 기업 가운데 M&A를 현지 주요 진출 방식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
유 변호사는 다만 한국 기업이 태국에 진출 시 법률 시스템 자체가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 위에 형성돼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권리나 의무를 주장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법원을 통한 해결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계약의 명확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며 “분쟁이 발생했을 때 한국 기업은 법적 해결을 전제로 대응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지에서는 협상을 통한 해결이 우선시되는 문화가 있는 만큼 이런 부분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현지 진출 시 고려해야 할 법률을 묻자 그는 ‘외국인사업법(Foreign Business Act)’을 꼽았다. 이 법은 기본적으로 외국인의 사업 참여를 제한하고, 허용되는 범위를 예외적으로 규정하는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을 따른다. 진출하려는 업종이 해당 리스트에 어떻게 분류되는지를 정확히 해석하는 게 매우 중요한 셈이다.
또한 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JV 구조로 사업을 전개하는 경우가 많아 외국기업의 경우 단순 지분 참여 이상의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예컨대 △경영권 확보 △투자 수익의 안정적인 회수 △지식재산권과 영업기밀 등 핵심 자산의 보호 등 요소를 고려하는 것이다. 그는 “스타트업과 기업뿐 아니라 벤처캐피털(VC) 등 투자사도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회사설립 절차만 준수하는 게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현지 법률 전문가와 함께 법적 계약적 장치를 마련하는 걸 권고한다”고 했다.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 자문까지 폭 넓힐 것디엘지는 한국 로펌의 해외 진출과 글로벌 협업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 나가고자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GBC)와 아시아 프랙티스 그룹(APG)을 만들었다. 기존 한국 로펌이 중점적으로 다뤘던 아웃바운드 자문 중심에서 인바운드 영역까지 포괄하기 위해서다.
그는 “실제로 동남아시아 로펌을 보면 오히려 한국 로펌보다 더 글로벌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며 “각국 내수 법률시장이 작아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인바운드 자문에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일부 중소 로펌의 경우 전체 매출의 60~70%를 인바운드 업무에서 올리는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올해 디엘지 태국법인은 시장 선점과 조기 업무·재무적 안정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달려갈 예정이다. 구체적으로 태국 내 법인 운영의 손익분기점(BEP)을 빠르게 달성하고,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사업 구조를 만드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외에도 한국 기업들이 태국을 ‘투자의 나라’로 다시 인식하도록 도울 방침이다. 그는 “지금까지 태국은 우리에게 관광지로 익숙한 나라였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산업 기회가 존재하고 특히 중장기적인 시장 진출을 고민하는 기업에 매력적인 조건을 갖춘 국가”라며 “인식을 전환하고 한국 기업들이 태국에 진출할 때 전략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