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근우 기자] 스팩(SPAC)과의 합병을 통한 우회상장을 시도했던 벤처캐피탈(VC)이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벤처투자법)’에 발목잡혀 상장에 실패하면서 법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같은 VC중에서도 창업투자회사(창투사)만 벤처투자법의 적용을 받고, 기술사업금융회사(신기사)는 여신금융업법의 적용을 받는다.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창투사가 신기사에 비해 불합리하게 ‘차별 아닌 차별’을 받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 | (사진=중소벤처기업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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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된 지 만 3년 가까이 돼 가지만…계속되는 혼란HB인베스트먼트와 캡스톤파트너스는 스팩과의 합병을 통해 증시 입성을 노렸지만, 벤처투자법 시행령 25조(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의 행위제한)가 문제가 되며 계획이 무산됐다. 이들은 스스로 스팩 합병 상장을 철회하고 추후 직상장을 통해 증시에 발을 들이겠다는 방침이다.
발목을 잡은 벤처투자법 시행령 25조(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의 행위제한)는 창업투자회사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에서 규정하는 금융회사의 주식을 취득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창투사 역시 금융실명법상 금융회사에 포함되므로 결국 창투사가 창투사의 지분을 가질 수 없게 되는 셈이다. 통상 스팩이 상장할 당시 VC는 발기인으로 참여하며 일부 지분을 보유하는데, 합병 시 이들이 증시에 입성하는 VC의 지분을 가지게 되는 것이 문제가 됐다.
상장을 시도하는 VC도, 상장 주관사를 맡은 증권사도 이 점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서로 꼼꼼히 챙기지 못한 것도 사실이겠지만, 법률의 제정 취지와 다소 관련성이 떨어지는 방식으로 법이 적용됐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벤처투자법은 지난 2020년 기존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기업육성법)과 중소기업창업지원법(창지법)에 흩어져 있던 벤처투자 관련 내용들을 통합하며 만들어진 법이다. 법이 만들어질 당시만 해도 규제 완화를 통해 유니콘 기업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다만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가 발목을 잡는 일이 번번이 발생했다. 안 된다고 명시한 것이 아니면 일단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와 달리 ‘포지티브’ 규제는 명시한 것만 허용하고 나머지를 모두 금지한다.
벤처투자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당시 준비가 충분히 안 된 상태로 법을 너무 급하게 만들고자 했던 것이 현재의 이런 문제들을 낳는 것 같다”며 “이런 문제들이 계속 발생하는 것은 결국 입법 불비(不備)”라고 말했다.
곳곳에서 문제 발생…‘누더기법’ 우려에 ‘차별’ 불만도앞서 지난 2021년에는 공동운용(Co-GP) 벤처펀드 조성에서도 혼란이 생겼다. 벤처투자법을 따르는 VC는 증권사나 자산운용사와 Co-GP 벤처펀드를 조성할 수 있지만, 자본시장법과 금융사지배구조법 시행령을 따르는 벤처펀드는 조성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는 자본시장법과 금융사지배구조법 시행령에 벤처투자법 이전 법인 벤처기업육성법, 창지법이 규정돼 있었던 탓이다. 시행령이 벤처투자법으로 수정되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펀드 결성이 무산된 사례가 발생했고, 최근에서야 금융위원회가 이와 관련한 의결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 이전에는 엑셀러레이터(AC)와 VC의 협업을 사실상 허용하지 않는 문제로도 논란이 됐다. 이 때문에 경고 조치를 받을 것을 우려한 곳에서는 스스로 엑셀러레이터 자격을 반납하는 일도 발생했다.
법적 미비점을 보완할 개선책으로는 예외조항을 두는 형태로 법안을 개정해나가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다만 자칫 너무 많은 예외를 둘 경우 제정 과정에서의 취지와는 점점 동떨어져 ‘누더기법’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또 기존에는 허용됐던 것이 법률 개정으로 인해 위반사항이 되는 사례도 있어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안심하고 사업을 진행하기 힘들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창투사만 지나치게 행위 제한 규제가 많다 보니 신기사에 비해 사실상 ‘차별’받고 있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실제로 신기사가 자본금 요건이 더 높고 설립 인가도 오래 걸리는데도 불구하고 새롭게 설립된 CVC(기업형 벤처캐피탈)들을 살펴보면, 신기사 선호 현상이 뚜렷하다. 펀드 소진 기한이나 투자범위 등의 규제에서 훨씬 유리하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한 창투사 관계자는 “창투사는 다른 VC에 비해 행위 제한이 많은 것이 사실이며 신기사와 비교해봤을 때 일부 차별이 맞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법안이 마련된 지 아직 만 3년도 채 되지 않은 만큼, 주무부처인 중기부에서 업계 목소리를 더 잘 들어주고 이를 발빠르게 수렴해 좋은 방향으로 개선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