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대연 기자] “내가 굴려야 하는 자산만 2조원이 넘는다. 그걸 다 직접 운용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인력이 필요한데, 지금 사람이 없다.”
국내 연기금과 공제회 등 자본시장에서 손꼽히는 투자기관에서 왜 직접 투자하지 않고 매번 공들여 위탁운용사를 선발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연기금 고위관계자가 한숨 쉬며 이렇게 답했다. 지난해 본격화된 금리 인상에 현금이 바짝 메마른 와중에도 꾸준히 출자사업을 진행한 큰손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콘테스트(연기금과 공제회 위탁운용사 선정) 준비에 여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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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나는 자산에 안전한 위탁 운용 선호수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국내 기관투자가들 대부분은 직접 투자하기보다 전문 운용사(GP)를 통해 간접 투자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물론 자산별로 과거에 성과가 좋았던 운용사에 위탁하면 안정적인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실상은 막대한 규모의 자산을 맡아 운용할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에 간접 투자를 택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다수다.
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연초부터 우정사업본부·사학연금·노란우산공제·행정공제회·과학기술인공제회 등은 국내외 주식과 채권, 부동산 블라인드 펀드(투자처를 정해놓지 않고 운용사가 자유롭게 투자하는 펀드) 투자를 위한 위탁운용사 선발 작업에 한창이다. 이들 기관은 모두 최소 10조원에서 약 140조원이 넘는 자산을 굴리고 있다.
대부분 연기금과 공제회의 자산 규모는 해마다 수조원씩 불어나는 추세다. 이미 각 기관 특성에 맞춰 포트폴리오와 의사결정구조가 구축된 지 오래됐을 뿐 아니라 해외투자 경험까지 풍부한 운용역들이 초창기에 자리 잡으면서 투자 저변을 넓혀놓은 덕분이다.
그러나 자본시장이 커지고 자산이 증식하는 속도에 비해 인력 충원 속도는 현저히 더디다. 특히 연기금과 공제회는 ‘규모의 경제’에 따라 자산 규모가 적은 곳은 한 사람이 두세 가지 업무를 동시에 맡아야 할 때도 많다. 직접 투자만 하는 구조였다면, 열 명도 채 안 되는 소수의 운용역이 점점 더 많은 자산을 감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을 것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기관투자가의 간접 투자 활성화가 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한 사람이 수조원씩 맡아야 하는데 얼마나 부담스럽겠나”며 “또 기관들이 운용사에 자산을 맡김으로써 페이퍼컴퍼니(SPC)나 자산관리회사(AMC) 등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어 앞으로도 위탁 운용은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 | (사진=이미지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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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역 전문성 키우기 어려운 ‘순환보직’국내 연기금과 공제회는 순환보직 체제로 약 2~3년 주기로 실무자들 이동이 잦다.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제도이지만, 업무 파악이 될 때쯤 다른 부서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각자 전문성을 키우기엔 한계가 있다. 설상가상 일부 기관에선 직원들이 리스크를 회피하고자 운용부서보다 행정부서로 옮기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기관은 ‘계주’로서 회원들의 돈을 받고 수익을 많이 내야 하는 게 최우선”이라면서도 “순환 보직 체제는 새로 들어온 직원들이 전문성을 쌓기 어려운 구조여서 자체적인 투자 역량을 기르는 데 비교적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투자기관인데도 사무관리 담당과 운용 담당 직원 비율이 6:4 정도”라고 덧붙였다.
국내 큰손들이 계속해서 수익성을 높이려면 직간접 방식을 가리지 않고 투자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지금처럼 시장이 불안정할수록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전문 운용역들이 자산 유형에 따라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온다. 이를 위해선 직원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새로운 인력들을 끌어들일 만한 요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전문 운용사에게 자금을 맡기는 이유는 그들이 더 잘하기 때문”이라며 “기관들이 우수한 운용역들로부터 더는 외면받지 않고 자산을 키우기 위해선 그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