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조해영 기자] 322조원. 지난해 말 기준 한국투자공사(KIC), 새마을금고중앙회,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군인공제회, 건설근로자공제회의 총 자산 규모다. 이 기관들의 공통점은 투자를 총괄하는 CIO가 모두 삼성생명 출신이라는 것.
국내 최대 생명보험사인 삼성생명 출신들이 최근 주요 연기금과 공제회 등의 기관투자자 CIO로 줄줄이 발탁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생명이 일찍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로 투자 영역을 넓히며 인력 양성에 주력했던 것을 생각하면 다양한 자산을 총괄하며 장기투자에 힘써야 하는 기관투자자 CIO 자리에 삼성생명 출신들이 대거 포진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 KIC·공무원연금 등 삼성생명 출신 대거 포진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군인공제회는 최근 이상희 전(前) 롯데손해보험 자산운용총괄 상무를 CIO에 선임했다. 이상희 CIO는 20일부터 3년간의 임기를 시작한다. 군인공제회는 지난해 말 기준 12조7000억원에 달하는 자산을 굴리는 국내 주요 공제회 중 하나다.
이상희 CIO는 지난 1989년 삼성생명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1989년부터 지난 2014년까지 만 25년 3개월 동안 삼성생명에서 법인영업부를 시작으로 △재무심사팀 △전략투자부 △주식투자부 △뉴욕투자법인 등을 두루 거쳤고, 이후 롯데손보로 자리를 옮겨 2014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자산운용총괄 상무직을 맡았다.
현재 주요 기관투자자 가운데선 박대양 KIC CIO, 서원주 공무원연금 CIO도 삼성생명 출신이다. 1987년 삼성생명에 입사한 박대양 CIO를 필두로 1988년 말 입사한 서원주 CIO와 1989년 초 입사한 이상희 CIO가 박 CIO의 후배다. 박대양 CIO는 1987년부터 1998년까지 10여년간 삼성생명에 몸담았고, 서원주 CIO도 1988년부터 뉴욕법인, 싱가포르법인 등을 두루 거쳤다.
이 외에도 이위환 건설근로자공제회 CIO, 박천석 새마을금고중앙회 CIO 등도 삼성생명 출신이다. 이위환 CIO는 삼성생명에서 주식투자부장 등을 지냈고, 박천석 CIO 역시 삼성생명과 삼성자산운용에 몸담은 바 있다.
지난해 말 기준 24조원의 자금을 운용하는 이규홍 사학연금 CIO는 삼성생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1996년부터 삼성생명에서 4년간 경력을 쌓았다. 삼성생명뿐 아니라 삼성 금융계열로 넓혀 보면 지난 2016년 10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4년간 경찰공제회 CIO를 지내고 최근 중소기업중앙회(노란우산공제)로 자리를 옮긴 이도윤 CIO 역시 삼성자산운용을 거쳤다.
해외법인서 근무하며 자산운용 경험 쌓아연기금과 공제회 등 기관투자자의 CIO는 국내외 주식, 국내외 채권, 대체투자까지 다양한 투자 경험이 필요한 자리다. 다른 투자기관과 달리 단기 성과보다 장기 성과에 집중해야 하고, 포트폴리오상 자산군별 비중 조정도 신경 써야 한다.
이 때문에 삼성생명 출신들의 CIO 약진을 두고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생명이 자산운용에 상당히 일찍 눈을 떴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삼성생명은 지난해 말 기준 335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운용하면서 생명보험사 가운데서 독보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일차적으로 규모가 큰 탓에 삼성생명 출신들이 기관투자자를 포함해 곳곳에서 활약하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지만, 특히 해외투자 부문에서 인력 양성에 힘썼던 점이 다양한 자산군을 두루 관리하는 기관투자자의 CIO를 배출하는 기반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생명은 1986년 미국 뉴욕을 시작으로 싱가포르와 영국 런던 등에 투자법인을 두고 운영해 왔다. 다만 지금은 삼성자산운용이 이들 법인을 인수한 상태다.
서원주 CIO는 “삼성생명은 해외주식과 해외채권 투자 등을 가장 먼저 시작한 곳 중 하나인데 당시 국내외 모두에서 장기투자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조직이 거의 없었다”며 “증권사나 운용사는 주식이나 채권, 대체투자 등 전문 분야가 뚜렷한 반면에 삼성생명에선 종합적인 운용과 장기적인 자산배분을 두루 경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원주 CIO는 뉴욕투자법인 차장과 싱가포르투자법인 수석 등을 지내며 해외투자법인에서만 12년 가까이 근무했다. 이상희 CIO 역시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뉴욕투자법인에서 차장을 지내며 서원주 CIO와 함께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 출신의 한 CIO는 “다른 회사에서 해외투자 인력 채용에 소극적이었던 때도 삼성생명은 대규모로 채용해 인력을 육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삼성생명은 당시 한국보다 먼저 저금리 시대에 접어들었던 일본 등을 벤치마킹하면서 생보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투자를 잘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