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국민연금기금(이하 국민연금)이 딜레마에 빠졌다. 국내 증시가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낙폭을 보이자 금융투자업계에서 기관투자가의 역할론을 제기하고 나서서다. 650조원의 자금을 굴리는 큰손인 국민연금이 외국인이 ‘셀 코리아’에 나설 때마다 저가 매수로 맞서 증시 안전판 역할을 해왔던 만큼 이번 증시 폭락 사태에서도 ‘구원투수’로 나서야 할 때라는 얘기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내년부터 사실상 국내 증시에 신규 자금을 투입하지 않을 전망이어서 진퇴양난에 빠졌다.
“구원투수 안 돼”…수백만 위해 수천만 희생하는 꼴31일 국민연금에 따르면 올해 연말까지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18.7%로 줄일 전망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651조원 가운데 124조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해 전체 자산에서 국내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9%다. 특히 내년에는 18%로 2022년에는 15% 내외로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줄일 전망이다.
하지만 국내 증시가 이달에만 300포인트 이상 빠져 22개월 만에 2000선이 붕괴되는 등 기관의 증시 버팀목 역할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까지 나서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 축소 결정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나섰다. 그러나 연기금 관계자들은 이를 전면 반대하고 있다. 한 연기금 CIO는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을 단지 증시 하단을 받칠 수단으로 생각한다”며 “국민의 노후 자금을 일부 주식투자자를 위해서 쓸 때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 | ▲국민연금 가입자 추이(자료=복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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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작년 말 기준 국민연금 가입자는 2182만명으로 집계된 반면 주식 투자자 인구는 1000만명이 안 된다. 금투협에 따르면 이날 기준 주식거래활동계좌 수가 2681만개, 1인당 여러 개의 계좌를 가졌음을 고려하고 2013년 기준 주식투자자 인구가 500만명에 불과(개인정보 침해로 집계 안 함)한 점까지 생각하면 주식 투자자 인구는 국민연금 가입자의 3분의 1도 안 될 수 있다.
한 연기금 CIO는 “단순히 구원투수로 증시에 버팀목 역할만 해서는 답이 없다”며 “오히려 자금을 투입했다가 손실 폭이 커질 때 그 피해는 더 크다”고 말했다. 이는 국민연금의 성과 부진이 이어지면 기금 고갈 시기도 빨라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민연금 기금이 2044년에는 적자로 돌아서고 2060년이면 고갈될 것으로 전망한다. 또 감사원이 2015년에 발표한 ‘국민연금 운용·경영관리 실태’ 보고서를 통해 국민연금 수익률이 0.5% 떨어지면 기금고갈 시기가 3년, 1.0% 하락 시 5년, 2% 하락 시 9년 각각 앞당겨진다고 분석했다.
 | | ▲자료=복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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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서 국내 비중 2%…“해외 투자 늘려야”국민연금 측에서 주장하는 해외 투자 확대에는 공감을 표했다. 국민연금은 해외 주식 비중을 현재 19%에서 내년에는 20%로 2022에는 30% 내외까지 늘린다. 한 연기금 CIO는 “국민연금은 그간 높은 대형주 비중 탓에 시장에서 안전판 역할을 주로 하면서 정상적인 운용을 못 했다”며 “무엇보다 글로벌 시장에서 2%에 불과한 국내 주식 비중을 늘려서는 장기적인 수익률 제고에는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작년 말 기준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시장(비상장주식 및 위탁운용의 현금성 자산, 선물 옵션 금액은 제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9% 수준이다. 2015년 6.5%에서 2016년 6.7%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대형주 중심의 코스피에서는 국민연금 비중이 2015년 6.3% 수준에서 2017년 7.9%로 크게 증가했다.
이에 국민연금 수익률은 시장에 따라 크게 흔들렸다. 지난해 증시 활황 덕에 7%에 달하는 기금 수익을 올린 반면 올해는 지난 8월까지 수익률(금융부문)이 2%대에 불과하다. 이달 폭락까지 고려하면 연말에 1%대 수익률도 기대하기 힘들다. 이를 고려해 이수철 국민연금 운용전략실장도 이날 “기금이 장기 목표를 가지고 자산을 운용하다 보니 위험자산을 예전보다 많이 가지게 됐다”며 “앞으로 위험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기적인 저가 매수는 해볼 만”국민연금이 단기적으로 저가 매수는 해볼 만 하다고 조언했다. 다만 신규 자금 투입이 아닌 포트폴리오 조정에 그쳐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 연기금 CIO는 “국내 증시가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싸다”며 “올해 여유자금 조정을 통해 어느 정도 이익은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장기적인 틀을 깨서는 안 된다”며 “어느 정도 한도 내에서 포트폴리오 조정에 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기금 운용현황에 따르면 올해 여유자금 배분 규모는 96조원으로 7월 말까지 총 67조원이 배분됐다. 이 기간 국내 주식 여유자금 배분 규모는 9400억원으로 이미 1조5751억원이 집행된 상황이다. 한 연기금 CIO는 “하락장에서 저가 매수를 통해 단가를 낮춘다면 좋을 수는 있으나 손실을 본다면 국민연금은 기회가 없다”며 “시장에서 인위적으로 개입하기보다 결국 국민연금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전했다.
 | | ▲국민연금 자산군별 자금집행(자료=복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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