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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③환상을 주입했던 사람들

은행지주사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등록 2011-02-09 오전 11:36:16

수정 2011-03-13 오전 10: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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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상용 기자] 그렇다면 우리금융 출범이후 민간 은행들은 왜 앞다퉈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선언한 것일까. 물론 지주회사 체제가 유럽식 사내 겸영방식 보다 인수합병을 통한 외연 확장에 유리하다는 의견도 있다. 일반적인 자회사 방식에 비해 유연한 합병전략을 구사할 수 있고, 통합비용 측면에서도 낫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등 당시 민간 시중은행의 지주회사 전환 동기를 사람과 밥그릇 문제에서 찾는 이들은 당시 은행 내부상황에 주목하라고 조언한다.


 
2001년 신한금융지주로 탈바꿈한 신한은행부터 보자. 지난 1991년이래 신한은행을 이끌어온 인물은 라응찬 전 회장이다. 지배구조의 핵심은 일본 교포 주주들이었지만 행내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은 재일교포 주주를 등에 업은 대리인(agency), 라 회장이었다. 1991년 행장에 오른 그는 은행장 3연임을 달성한다. `4연임을 할 것인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던 무렵 라 전 회장이 택한 길은 지주회사로의 전환이다.

“은행 합병을 통한 외형성장 보다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비은행 부문의 균형적 성장을 도모하겠다”던 명분이 더해졌다. 2001년 8월 그렇게 신한금융지주가 세상에 얼굴을 드러냈고, `라응찬 행장 체제는 곧 `라응찬 회장` 체제로 전환한다. 이후 라 전 회장은 회장직 3연임에 이어 지난해에는 내쳐 4연임까지 이뤄냈다. 비록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했지만 라 전 회장에게 지주회사 체제는 그의 절대권력을 10년 가까이 늘려주었다.

하나금융 김승유 회장의 행보도 비슷하다. 1997년 2월 하나은행장에 오른 그는 8년 간 은행장을 지냈다. 이후 이사회 의장에 이어 2005년 12월에 출범한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맡아 2연임을 하고 있다. 지난해 외환은행을 인수하면서 올해 회장직 3연임 여부에 은행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나은행이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던 2004년 당시 이동걸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은행권의 지주회사 설립 붐에 대해 강한 우려감을 내비친 적이 있다. 그는 “지주회사로의 전환이 시너지 측면보다는 임기가 끝나는 은행장들의 자리보전을 위해 이용된다면 이는 우려할 점”이라고 경계했다. 그러나 이듬해 하나은행은 일정대로 지주회사로 전환을 마무리했다.

지주회사로 전환된 이후 지주사 회장과 사장, 은행장간 갈등으로 홍역을 겪지 않은 금융회사는 거의 없다. 금융지주 1호인 우리금융의 경우 초대 지주사 임원과 은행 임원간 관계는 갈등의 골을 넘어 아예 서로가 서로를 무시하는 수준에 이른다. 당시 윤병철 회장과 민유성 부회장, 정광우 부회장, 이덕훈 행장 사이의 불편한 관계는 은행권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오죽하면 2004년 우리금융의 새 수장을 맡았던 황영기 전 회장이 이헌재 부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행장과 회장을 겸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을까.

2008년 출범한 KB금융지주도 마찬가지다. 회장 황영기-행장 강정원이라는 투톱체제로 출범한 KB금융지주는 예상대로 시끄러웠다. 황 회장이 불명예 퇴진하기 전인 1년 동안 두 사람은 사외이사 인사문제와 지주회사 증자 문제를 두고 대립각을 세웠다. 물론 두 사람이 시차를 두고 물러나 둘 사이가 더 냉랭해지는 일은 없었다.

조용한 일처리로 은행권의 삼성전자라는 명성을 샀던 신한금융은 지주회사 출범 5년차에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2005년 1인자 라응찬 회장이 2인자 최영휘 사장을 내치는 일이 벌어졌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작년 9월에도 유사한 사태가 벌어졌다. 1인자와 3인자가 손잡고 2인자를 내치는 형국이 재연된 것이다. 신한금융내 권력암투는 결국 `빅3(라 전회장-신상훈 전 사장, 이백순 전 행장)`의 동반퇴진으로 일단락됐지만 신한금융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지주회사 출범이 꼭 행장들의 자리보전용이었다고 평가절하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절대 권력자와 2, 3인자 사이의 불필요한 갈등을 낳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회사 성장과 주주가치 제고에 적합한 인물이 오랜 기간 은행을 경영한다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다만 1인에게 권력이 장기 집중될 때 얼마나 심각한 CEO 리스크가 발생하는지 우린 이미 경험했다.

이 관계자는 “조직성장과 경쟁력 강화, 리스크 차단은 단순히 어떤 시스템을 채택하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승패는 시스템이 아닌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오상용 기자

thug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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