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오상용 기자] 구조조정의 나팔수, 국내 토종 사모펀드(PEF)의 개척자, 이헌재 사단의 핵심중 핵심. 김영재 칸서스자산운용 회장의 이름 앞에는 늘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IMF 외환위기의 회오리가 한창이던 1998년 금융감독위원회에 몸담으며 금융회사 구조조정의 현장을 누볐고 2004년 환갑을 앞둔 나이엔 자산운용업계의 슈퍼 루키로 성공적인 변신을 이뤄냈던 그다. “공무원에서 뼛속까지 철저한 장사꾼으로 바뀌었다”던 김 회장의 다짐은 칸서스 설립 6년 6개월이 지난 지금 하나 둘 결실을 보고 있다. 의료장비업체 메디슨 지분을 삼성전자에 매각한 뒤 새로운 매물을 물색하고 있는 김 회장을 마켓in이 만났다.
 | | ▲ 김영재 칸서스자산운용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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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눈발을 헤치고 찾아간 사무실. 캐주얼 점퍼 차림의 김 회장은 자신을 복 많은 사람이라 소개했다. 감독당국에서 쌓은 경험과 네트워크를 어떻게 활용해볼 수 없을까 해서 시작한 일이 능력 이상으로 잘 진행돼 행운으로 생각한다고 `인생 이모작`의 소회를 밝혔다. 성격 급한 기자는 메디슨 이야기부터 꺼냈다. 메디슨은 칸서스자산운용이 사모펀드를 출범한 후 집행한 첫 투자다. 금융인 김 회장에겐 첫 사랑과 다름없다.
"2005년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에 의해 사모펀드 제도가 도입되자 블라인드 펀드 형태로 1500억원을 모았습니다. 모집한 자금의 대부분은 메디슨에 집중 투자했죠.” 외국계 먹튀자본에 대한 반감과 대항마로 등장한 토종 사모펀드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시기라 김 회장의 부담도 컸다. 첫 투자대상이 어디일 것인지에 대한 시장의 관심도 자연 높았다.
“왜 메디슨이었냐구요. 우선 산업 전망이 밝았죠. 웰빙과 헬스케어 산업은 고령화 시대를 열어갈 미래 먹거리입니다. 메디슨은 그 분야에서 선두적 지위를 점하고 있었구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메디슨은 업계에서 상징적 회사였어요. 우리나라 벤처 1호로 젊은이들에게 많은 꿈을 심어줬던 업체죠. 재무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메디슨 내부엔 여전히 그런 DNA가 흐르고 있을 것이라 판단했어요.” 김 회장은 당시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했다.
5년간 쌓였던 정 때문일까! 김 회장은 메디슨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3가지 원칙을 고수했다. 무엇보다 메디슨을 글로벌 회사로 키울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기업, 적절한 가격조건을 제시하는 기업, 성실하고 용기있는 직원들이 좋아하는 기업이어야 메디슨을 인수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후보군중 3가지 조건에 가장 부합했던 곳이 삼성입니다.”
차기 작품(투자대상)을 알려 달라 졸랐다. 김 회장은 “아직 기업명을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현재 업체 2곳을 인수하기 위해 협상을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두 회사 모두 증권금융 분야의 업체로 조만간 투자로 이어질 예정이라고 했다. 그중 한 곳은 금융인프라 관련 업체로 IT를 기반으로 정보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업체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김 회장은 대뜸 “스마트폰 아시죠? 산업혁명에 버금갑니다. 이쪽과 금융을 접목하면 아이디어가 많이 생길 것 같아요”라고 했다.
매물 리스트를 들고 그의 방문을 두드리는 손님은 매일 끊이지 않는다. “저를 찾아오는 분이 있으면 실무진을 먼저 만나도록 합니다. 제가 먼저 검토하면 선입견이 생기게 마련이에요. 저는 실무팀과의 회의에서 한 명분의 발언권만 갖습니다.”
“나만의 매물 선별기준이나 철학, 그런 것은 없습니다. 매물 고르기는 이미 교과서에 다 나와 있잖아요. 그대로입니다. 기본적으로 해당 기업과 업종의 성장과 발전 가능성을 살핍니다. 발전 가능성이 있는데도 이런저런 경영실패와 환경적 이유로 애로에 처한 기업이 매물로 나오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고요.” 말은 쉽지만 실행으로 옮기려 하면 어렵다. 김 회장이 팀플레이를 중시하는 것도 여러 각도의 검토와 다양한 지혜가 결집돼야 투자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고 직원들의 능력 역시 120%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05년 토종 사모펀드의 맹아기를 거쳐 한국 사회엔 크고 작은 자산운용회사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김 회장은 이제는 정비가 필요한 시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장 안타까운 현실은 시장을 멍들게 하고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힌 인물들이 버젓이 시장을 활보하고 다니는 것이라고 했다.“정보화 시대이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은 IT도 앞서 있고. 투자자의 신뢰를 저버리고 시장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과 회사는 촘촘한 정보망을 동원해 끝까지 추적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장에 발을 디디지 못하게 해야 해요.” 김 회장은 정부가 의지를 보여야 시장 플레이어들이 법과 원칙을 지키면서 창의적인 투자활동을 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신의를 저버린 미꾸라지 몇몇이 자산운용시장 전체 물을 어지럽히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다.
6년여간 회사를 경영하는 동안 김 회장 역시 리더십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렸다. 김 회장이 체득한 리더십의 작동 원리는 두가지다. 전문성과 솔선수범이다. “과거에는 계급장이 먹혔지만 지금은 윗사람이 잘 모르면 그 틈새를 반드시 다른 뭔가가 파고듭니다. 그러면 그만큼 이익을 못내거나 손실을 보고 말죠. 그래서 리더는 전문성을 갖춰야 합니다. 다음으로 선두에서 몸소 부딪쳐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따르는 이가 없어요. 외로운 리더는 회사를 힘들게 합니다.”
남의 돈을 굴려 수익을 안겨주는 일은 자주 피를 말린다. 한번의 오판이 투자자에게 씻을 수 없는 불신과 경제적 손실을 안긴다. 김 회장에게도 말 못할 스트레스가 적지 않을 터. 어떻게 해소하고 사느냐고 묻자 살다가 아주 힘들 때면 스트레스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보라고 했다.
“제 나이 64세인데요. 이 나이에 좋은 차 타고, 기사도 있고 비서도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제가 받는 대우의 대가가 아닐까요.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스트레스를 더 받아도 좋다고 여기게 됩니다.” 김 회장은 생각의 정리가 필요할 때 집에서 가까운 청계산을 찾는다. 이런저런 의제를 안고서 산을 오르다 보면 어느듯 정상. 한걸음 한걸음 발을 옮길때 마다 생각은 정리되고 그렇게 해서 내린 판단은 상당히 견실하다고 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펀드매니저는 선망의 대상이다. 펀드매니저란 단어는 억대 연봉과 남태평양 휴양지에서 꿀맛같은 휴가, 근사한 아파트 그리고 외제차와 오버랩되기 일쑤다. 김 회장에게 펀드매니저를 꿈꾸는 후학들을 위해 조언을 청했다.
“여기 오면 마치 노다지라도 캐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세계에서 제일 공부를 많이 했다는 사람들 다 어디에 모여 있습니까. 월스트리트에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서 내로라 하는 석학들, 섬(여의도) 안에 다 모여있습니다. 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자유지만 성공하기는 어렵습니다. 치열한 자기계발과 공부가 필요합니다. 그래도 이것만은 말해주고 싶어요. 금융의 처음과 끝은 신뢰입니다. 금융인으로서 자세, 즉 신뢰를 갖춰야 합니다.”
“돈 말입니까? 신뢰를 지키면서 열심히 앞을 보고 일에 전념하세요. 그러다 보면 어느날 문득 뒤를 돌아봤을 때 쌓여 있는 게 돈입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제2호 마켓in`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2호 마켓in은 2011년 2월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381, bond@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