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일문 기자] 범죄 현장에서 붙잡힌 두 명의 용의자가 경찰서로 끌려왔다. 형사들에게 자백을 강요당하지만 의외로 여유롭다. 범죄의 사실은 이들의 자백 말고는 입증할 길이 없으니 둘이 짜고 모르쇠로 일관하면 혐의없음으로 풀려나는 것은 시간 문제다.
하지만 형사들은 이들을 서로 다른 취조실로 끌고가 격리시킨다. 그리고 공범이 옆방에서 모든 죄를 시인했으니 또다른 공범인 너도 빨리 실토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각각의 용의자들을 회유한다.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고 혼자 죄를 다 덮어쓸 것인가. 아니면 (옆 취조실의 배신자처럼) 죄를 낱낱이 고백하고 조금이라도 감형을 받을 것인가. 고민스럽다. 진실과 거짓, 두개의 카드 중 누군가 거짓을 내던졌다면 나머지 한 사람도 계속 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 결국 두 명의 용의자는 진실을 말하게 되고, 함께 감옥으로 향한다.
`죄수의 딜레마`는 정보의 비대칭에서 출발한다. 거짓이든 진실이든 말을 맞춰야 함에도 불구하고 두 용의자가 서로 다른 공간에 존재함으로써 정보는 단절되고,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회사채 시장에서도 이같은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채권을 발행하려는 기업이 등급을 의뢰한 신평사에게 있지도 않은 타 신평사의 등급 상향 소문을 슬쩍 흘려주는 경우다.
등급 평정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교류가 차단된 신평사들로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정보가 아닐 수 없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등급 차별화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국내 신용평가업계 여건상 이같은 불량 정보가 자칫 등급 버블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최근 시장에서 D업체의 등급 상향설이 또다시 흘러나오고 있다. D사는 회사채를 발행할 때마다 등급이 올라갈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던 만큼 신평사들이 D사의 농간에 놀아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급 상향설`에 시장이 술렁이는 것은 아직도 신평사들이 회사채 발행사들의 영향력에 휘둘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결국 문제의 해결은 소신으로 귀결된다. 범죄 용의자들의 소신이라 함은 형사의 꼼수를 무력화 시킬 거짓말에 불과하지만 신평사들의 곧은 심지는 등급의 적정성이자 신뢰도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