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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F 운용사가 좀처럼 망하지 않는 이유

  • 출렁이는 업황에도 파산없는 PEF
  • 핵심 인력의 장…위기 대처에 탁월
  • 고른 투자 분배…수익률 사수 기본
  • 위기때 자산 매각·폭탄 배당 감행
  • 기다리면 된다 판단에 펀드 연장도
  • 등록 2023-09-06 오후 6:08:35
  • 수정 2023-09-06 오후 6:08:35

이 기사는 2023년 09월 06일 18시 08분에 마켓인 프리미엄 콘텐츠로 선공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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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시장이 출렁이다 보면 다양한 상황이 펼쳐진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잘 나가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영광을 뒤로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곳도 있다. 위기와 기회가 늘 공존하는 자본 시장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남의 돈을 빌려 돈을 버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는 좀처럼 망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아 그런 데가 있었어?’라고 되물을 정도의 존재감 희미한 운용사는 망한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자본시장에서 복수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PEF 운용사들은 사업을 접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전체 운용자산에서 회사 자본금이 10% 될까 말까 한 PEF 운용사들이 망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의 돈을 빌려 돈을 버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는 좀처럼 망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전체 운용자산에서 회사 자본금이 10% 될까 말까 한 PEF 운용사들이 망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데일리DB)
분산 투자가 핵심…대박보다 쪽박에 치중

일단 전제로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PEF 운용사에서 일하는 인력들은 제한된 기회를 잡은 인물들이 대다수다(불공정 경로로 들어온 이들은 제외). ‘나도 PEF 운용사에서 일해볼까’라며 무작정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만큼 제한적이고, 유능한 인력에만 허용된 분야기도 하다. 최상위권 대학 학·석·박사는 기본이고, 변호사나 회계사 정도의 자격증을 갖추고 해당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야만 입문의 길이 생긴다. 과거에는 이른바 ‘금수저’들의 사회 진출 통로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그런 경향이 많이 줄고 있다.

이 전제를 적용하면 PEF 업계 종사자들은 자본시장 흐름에 민첩하고 기민하게 대응한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투자하면 최고 몇 배를 벌 수 있다는 경우의 수도 따지지만, 반대로 투자에 실패했을 때 위험을 어떻게 헷지(회피) 하느냐도 중요하게 따져본다. 운용사별 정도 차이는 있지만 어떤 운용사들은 이 리스크 헷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투자금을 잃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에 관심이 쏠린다. 정상적이고 건전한 PEF 운용사라면 포트폴리오(투자처) 한 두 곳 수익률이 빠졌다고 해서 낙담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PEF 운용사들은 리스크 헷지를 위해 하나의 펀드에 다양한 투자처를 담기 때문이다.

예컨대 1000억원짜리 블라인드펀드를 만든 PEF 운용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운용사는 100억원 규모 투자 10개 집행을 기본 골격으로 두고, 좀 더 승산이 있는 투자처가 있다면 금액을 상향 조정하면서 최소 5~7개의 투자처를 꾸릴 가능성이 크다. 수익과 위험의 고른 분배를 위한 결정이다. 편하게 생각하면 진짜 대박이 확실한 투자처에 1000억원을 올인하는 게 낫지 않느냐 생각할 수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리스크가 너무 큰 투자기 때문이다. 이 리스크는 좀처럼 보지 못하는 ‘파산’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하나의 펀드에 여러 포트폴리오가 담겨 있다면 펀드가 운용 기간 모종의 수익률이 찍힐 것이다. 어떤 투자처가 망한 투자로 귀결되더라도 다른 투자처들이 수익을 내면서 이를 메워주면 된다. 실제로 국내 자본시장에서 내로라하는 PEF 운용사들도 수익률이 마뜩잖은 아픈 손가락들이 꽤 있다. 한숨이 절로 나오다가도 이내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이유는 전체 펀드 투자 수익률이라는 버퍼(buffer·완충장치)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위기때 자산 매각·폭탄 배당…펀드 연장도 불사

두 번째는 투자 회사가 보유한 부동산 등 자산을 매각하면서 야금야금 투자금을 회수하는 이른바 ‘곶감 빼먹기’ 전략이 있다. 투자 회사가 실적이 잘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매출이 자꾸 줄고, 시장점유율까지 빠진다면 거액의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몰려온다.

이때 보통 투자 회사가 보유한 매장이나 공장, 국내외 부동산을 하나씩 매각하면서 차입금을 상환한다. 이러한 전략은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구사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투자 회사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은 흔들릴지언정, 부동산 가치가 오름세를 타면 자산 매각 실리를 높일 수 있어서다. 꼼꼼한 PEF 운용사들은 이런 상황을 미리 인지하고 투자처를 고를 때 그 회사가 보유한 부동산 가치가 얼마인지에 대한 분석도 곁들인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우리가 상황이 참 좋지 않습니다’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어서다. 매장 수가 줄면서 인력 배치도 다시 해야 하고 급기야 인력을 줄이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한다. 생업 전선에 있는 노동자들로서는 이러한 전략을 반길 리 만무하다. 사회적 이슈 내지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상장사를 투자했을 때는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자금 회수 방안을 감행한다. 이른바 ‘폭탄 배당’이나 ‘유상감자’ 등이 대표적이다. 대게 PEF 운용사가 40~9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장사 주가가 속절없이 미끄러질 때 이 방법을 쓴다.

예상을 뛰어넘는 폭탄 배당은 주주에게는 언뜻 좋게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수혜의 대부분이 최대주주(PEF 운용사)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줄어든 주식만큼 보상해준다는 취지로 봤을 때 무리한 수준의 유상감자도 결국 최대주주 주머니 채우는 행위로 비치곤 한다.

‘당장 손실이 나게 생겼는데 어쩌느냐’고 묻는다면 해줄 말은 없다. 그러나 이런 자금 회수 방식을 두고 시장에서는 ‘갈 데까지 간 전략’으로 분류한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앞선 상황들이 여의치 않거나 시간을 좀 더 들이면 반등을 모색해 볼 수 있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펀드 청산을 아예 미루거나 차기 펀드로 현 투자처를 이관하기도 한다.

통상적으로 블라인드펀드라는 게 10년 안팎의 운용기간을 가지지만 투자자 동의만 이끌어낸다면 운용 기간을 더 늘릴 수 있다. 컨티뉴에이션펀드로 잘 알려진 펀드 이관도 같은 맥락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만 좀 생소할 뿐이지, 미국에서는 흔히 쓰는 전략”이라며 “앞으로도 국내에서 자주 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위에 거론한 방법 말고도 투자금을 회수하는 전략은 많다. 이런 전략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자본시장에서 쓰이는 자금 회수 전략은 지금 이 시간에도 개발 중이고, 사용 중이다.

남의 돈으로 투자하는 M&A 시장 참여자인 PEF 운용사들이 좀처럼 망하지 않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서 원인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스마트한 전략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악착같다 비춰질수도 있다. 불현듯 ‘범죄만 아니면 돈 버는 일에는 그 어떤 제한도 없는 거 아니냐’ 말하던 한 자본시장 관계자의 말이 떠오르는 어느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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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4회 SRE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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