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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점 투성이 해외투자, 소송으로 부당한 피해 막는다”

  • 법무법인 린 금융소송 전담 변호사들
  • 금융투자 소송 다수 맡으며 쌓아온 전문성
  • 中공기업 어음 부도 소송서 불리한 판 뒤집고 승소
  • 국내 금융사의 실사미비 관행 개선에 일조
  • “전문투자자도 속을 수 있어, 부당한 손해는 막아야”
  • 등록 2023-05-18 오전 8:30:00
  • 수정 2023-05-19 오후 4:36:48

이 기사는 2023년 05월 18일 08시 30분에 마켓인 프리미엄 콘텐츠로 선공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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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지영의 기자]최근 수년 사이 빠르게 팽창한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가 화두였다. 증권사·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회사들이 너나할 것 없이 해외로 뻗어나가 현지 투자 상품을 국내로 대량 들여왔다. 문제는 국내 투자은행(IB)이 덥석덥석 집어온 해외 투자상품들에 위험과 허점이 상당히 많았다는 사실이다. 중국 공기업 중국국제에너지화공집단(CERCG) 사채 관련 부도 사태, 미국 더드루 라스베이거스 리조트 개발사업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 등 해외 상품에 대한 검증(실사) 미비로 국내 투자자들이 최대 수천억대 손실을 입게 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했다.

실사부족 등 불완전 판매로 인해 발생한 부당한 손실은 응당 보전 받아야 하지만, 금융 소송전은 쉽지 않다. 고도의 복잡하고 난해한 금융투자 상품 구조를 꿰뚫고 허점을 정확하게 짚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소송일수록 제대로 된 전문가가 필요한 법이다. 이데일리가 국내 자본시장에서 발생한 다수의 금융투자 소송전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법무법인 린의 금융팀 윤현상(미국 변호사), 나윤민, 이홍원, 강민구 변호사를 만났다. 법무법인 린은 CERCG 소송전 2심에서 불리한 판세를 역전시켜 주간 금융사의 실사 부족 책임을 입증해냈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법무법인 린 (왼쪽부터)윤현상(미국 변호사), 나윤민, 이홍원, 강민구 변호사
‘영리한 전략’ 쓴 금융투자 소송 전문가들…추상적 ‘실사의무’ 현실화 해내

CERCG 소송전은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이 주간사로서 국내에 판매한 1600억원 규모 해외 사모사채 연관 투자 상품(ABCP)이 3일 만에 부도나면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두 증권사의 직원이 ABCP 판매 전 뒷돈을 받은 정황도 드러났다. 현대차증권 등 국내 전문투자자들은 주간사가 CERCG의 자회사가 본사의 보증으로 발행한 ABCP를 판매하기 전에 투자위험을 충분히 조사하지 않은 책임을 문제삼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전부 패소했지만, 2심부터 합류해 힘을 보탠 법무법인 린이 실사미비 책임을 입증해내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1심과 2심의 결과 차이를 만든 핵심 요인은 법무법인 린 금융팀 변호사들의 영리한 접근 전략에 있다. 이들은 1심에서 김앤장이 집중했던 부가적인 상황들을 모두 쳐내고, 재판부가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핵심적인 맥락을 잡아 강조했다.

이홍원 변호사는 “패소한 1심 기록을 살펴보니 실사의무와 연관될 수 있는 자본시장법의 여러 규정 등 법리에 기반한 주장은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재판부를 설득할 핵심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국면 전환을 위해서는 자본시장법 자체에 매어 있어선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자체에 집중했다”며 “담당자들이 국내에 뒷돈을 주면서 다급하게 거래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위험 요인이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조사를 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실사의무가 자연스럽게 도출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부장판사까지 거치며 장기간 재판부의 핵심에 서 왔던 나윤민 변호사가 법무법인 린 금융팀에 합류한 점도 역량 보강에 큰 보탬이 됐다. 재판부의 시각에서 종합적인 접근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나 변호사는 “이번 승소의 의미는 해외 현지 상황에 명확히 문제가 있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기존 업무 관행대로 하고 적극적 조사를 하지 않은 사례에 책임을 묻게 됐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이어 “일반인이 아닌 금융 전문가라면 위험 판단을 위해 부도 위험의 여러 가능성을 점검해봤어야 했다”며 “중국 정부가 공기업 부채 규제를 시작했다는 현지 금융 규제 정책 동향도 파악했어야 하고, 이에 영향을 받은 중국 공기업 측이 다급하게 사채 발행 협조를 요구하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가 조사를 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CERCG 소송이 벌어지기 전까지 국내에는 투자를 중개하는 금융사의 실사 의무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이 없었다. 자본시장법에도 명시적인 개념이 없었기에 실사의무가 중요함에도 도덕률 내지는 권고사항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법무법인 린이 금융사의 실사미비를 입증해낸 사례는 향후 관련 소송에서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윤현상 미국 변호사는 “실사의무를 거창한 영역으로 확장할 필요는 없다. 주간사들이 해야 할 당연한 질문들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대출을 해주려면 돈을 받아갈 곳이 어떤 회사인지, 그 특성과 역량, 사업 동향과 자금 용도 등에 대해서도 파악해야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CERCG 주간사였던 증권사 직원들은 조달 과정에 자금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 조차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법무법인 린 법무법인 린 (왼쪽부터)윤현상(미국 변호사), 이홍원, 나윤민, 강민구 변호사
“합리적 실사의무 확립 통해 전문투자자들의 일방적이고 부당한 손실 막아야”

법무법인 린은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부당한 손해 구제 문제에 관심이 높다. 금융사의 고의 혹은 부주의에 따른 실사미비 앞에서는 아무리 전문투자자로 분류되는 기관투자가들도 속수무책으로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지적이다.

윤 변호사는 “금융권에서는 OEM 방식으로 금융상품을 만들어서 실사를 대충 해놓고도 서로 책임을 회피하는 구조를 만들기도 한다”며 “스폰서가 실사부실 자산 딜을 들고 와서 운용사에게 펀드 개설 지시를 한다. 법적 책임이 따르는 판매사는 또 제 3의 금융사에게 맡기고 별도 약정으로 자산 양수도 계약도 한다. 이러면 판매사는 실질적인 판매사가 아니게 되면서 책임질 구조가 틀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민구 변호사도 “OEM에 대한 자본시장법적 규제가 자산운용사나 판매사에는 있는데 주간사가 위임을 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규제 공백이 있다”며 “이런 부분이 시행령 개정 등으로 제도적으로 보완되면 부당 손해 구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린은 CERCG건 외에도 금융사의 합리적 실사의무 정립에 영향을 미칠 금융투자 소송 건을 다수 대리하며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해외 부동산 실사 문제가 불거진 미국 더드루 라스베이거스 리조트 개발사업 관련 소송 1심·미국 현지 발전소 투자 손실 문제 등도 법무법인 린이 맡았다. 특히 더 드루 소송의 경우 기본적인 현지 시장조사 및 고지 의무를 둘러싼 사안이라 재판 과정에서 유의미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나 변호사는 “더 드루 소송의 쟁점은 국내에서는 너무나 생소한 미국법상의 제도인 부동산 소유권 양도제도(DIL)에 대해 국내 투자자들에게 사전 고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DIL을 통해 저당 부동산이 해외 선순위 채권자에게 넘어갔고, 국내 투자자들은 예상도 못한 채로 손해를 보게 됐다” 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도 “부동산 투자의 경우 현지 시장과 건물 등 여러 입지를 보는 것도 있겠지만, 국가별 고유의 법 규정에 대한 이해도 기본적으로 중요하다”며 “더드루는 IB가 미국법에 대해 조사를 제대로 안 하고, 투자자 고지도 하지 않은 점이 실사 업무 미비 소지에 포함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미국 현지 발전소 투자 사례의 경우 국내 금융사가 해외 상품 구조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아 문제가 생긴 경우다. 표면적으로는 일반적인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구조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중요한 허점이 있었음에도 국내에 판매한 운용사가 이를 명확히 파악하지도,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고지하지도 못한 경우다. 운용사가 제출한 107페이지의 실사보고서 상에 ‘암시’할 수 있는 1개의 문장이 있었으나 기관투자자들이 이를 명시적으로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윤 변호사는 “이 경우 상품 구조 내에 딱 하나가 비틀어져 있었다”며 “메자닌 상품의 경우 기한이익상실(EOD)가 발생할 경우 담보자산 외에 건질 것이 없는데, 여기엔 메자닌에 투자자에게 가야할 담보가 해외 선순위 투자자들에게 가 있었다. 해외 딜을 불리한 구조로 들고 들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투자자들은 당연히 일반적 메자닌 구조를 생각하고 손실 발생 시에도 일부 원금 보존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던 상황이었다. 나중에 문제가 터지고 보니 담보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라며 “전문투자자의 책임도 있다고 주장할 수는 있을 거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금융사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계약하고, 수수료까지 내고 투자하는 상황에서 107페이지 중 한 문장을 발견해 의미를 파헤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하기에는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윤 변호사는 장기적으로 국내 자본시장에서도 해외처럼 실사의무 관련 판례법(judge made law)이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원이 적극적인 해석에 나서서 책임이 있는 이들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는 판례들이 늘면 실사미비로 이어지는 업계 관행들이 차츰 개선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를 통해 국내 금융사들이 해외에 생소한 상품을 국내로 중개할 때 ‘문지기’ 역할을 더 충실히 하게 될 것이라는 것.

윤 변호사는 “국내에서는 자본시장법이 실사 책임을 명시적으로 묻지 않아서 해외 상품을 가져와 판매한 금융사에게 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다”며 “CERCG 같은 판례가 활발하게 많이 도출되면 점차 한국 자본시장에서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투자자 피해가 생기는 일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도 “CERCG 2심 사례 이후로 구조화금융 부문에서 기초자산에 대한 주간사의 실사 의무를 인정했던 방향의 2심 판례가 최근 (상고기각으로) 확정되기도 했다”며 “그동안 실사의무 범주나 개념 확립이 쉽지 않은 분위기였지만, 이제 점차 굉장히 의미 있는 판례들이 대법원에서 축적될 것이라고 본다. 시장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실 것을 당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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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4회 SRE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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