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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살길래 데이트 포기"…유가 급등이 바꾼 美 데이트 풍경

"기름값 무서워 멀리 살면 만남 시도조차 안해"
이란 전쟁에 휘발유 갤런당 4.32달러…1년새 38%↑
데이트 앱 반경 좁히고 "우버 비용 내달라" 요구도
데이트 한번에 29만원…"칵테일 대신 커피" 알뜰 만남

등록 2026-06-04 오후 3:51:41

수정 2026-06-04 오후 3:51:41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 플로리다주 파클랜드에 거주하는 레이철 타바크닉은 올해 “더 많이 데이트하겠다”고 결심했지만 조건을 달았다. 너무 멀리 운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4개의 데이트 앱을 모두 집에서 10마일(약 16㎞) 넘게 떨어진 사람은 걸러내도록 설정했다. 차로 20~30분 넘게 걸리는 사람과는 만나지 않기 위해서다. 천정부지로 오른 기름값 때문이다. 타바크닉이 살고 있는 마이애미 권역의 휘발유 가격은 1년 전 갤런당 3.01달러에서 현재 4.11달러로 올랐다. 그는 “기름 한 통에 약 50달러(약 7만 6000원)인데, 한 시간 거리에서 데이트하면 사흘 만에 한 통을 다 쓴다”고 말했다.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미국 내 기름값이 치솟으며 데이트 풍경도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이미 커플인 경우든 첫 만남이든 서로 차로 데리러 와달라는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 싱글의 경우 상대를 고를 때 먼 곳에 살면 아예 만나보지도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말 그대로 ‘사랑을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가 기름값에 달려 있는 셈이다.

(사진=AFP)
마켓워치는 3일(현지시간) 미 자동차협회(AAA)를 인용해 전날 기준 미국 휘발유 평균 가격이 갤런당 4.32달러로 1년 전 같은 시기(3.14달러)보다 크게 올랐다며, 이에 따른 데이트 비용 부담도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기존에도 데이트 비용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한 설문조사에서 Z세대의 절반 이상이 한 달에 데이트에 돈을 전혀 쓰지 않는다고 답했는데, 재정 안정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이런 상황에서 기름값까지 오르면서, 사랑을 찾아 얼마나 멀리 갈지를 두고 선을 긋는 싱글이 늘고 있다는 진단이다.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인 인디애나주 매디슨에 사는 존 레이저는 기름값 탓에 데이트 앱에 아예 접속하지 않고 있다. 그는 “데이트 앱이 보여주는 상대의 90%가 차로 두 시간 넘게 걸리는 곳에 있었다”며 “전쟁이 터지고 기름값이 오른 뒤로는 검색 반경을 60마일(약 96.6㎞) 이내로 줄였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인들 중엔 기름값을 내려고 비상금을 꺼내거나 후불결제(BNPL)로 연료비를 메우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일부는 데이트 상대에게 오가는 차량 호출(우버) 비용을 대신 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10년 경력의 전문 매치메이커(중매인) 애나 모건스턴은 “올해 처음으로 고객에게 상대 여성을 위해 우버를 불러주라고 부탁한 일이 있었다. 그가 만나자고 한 곳이 여성에게 다소 멀었는데, 여성이 ‘그 돈은 못 쓰겠다, 원하면 그가 내라’고 했다”며 결국 두 사람은 두 번째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또 “우버 비용을 내달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과거엔 여성들이 이렇게까지 교통편을 요구한 기억이 없다”고 덧붙였다. 10년 경력의 그조차 물리적 거리가 지금처럼 결정적 걸림돌이 된 적은 없었다고 했다.

실제 최근 온라인에서도 뉴욕에 사는 한 남성이 세 번째 데이트 때 상대 여성이 우버를 불러달라고 요구했다고 적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가 거절하자 여성이 약속을 취소한 것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글을 쓴 남성은 “늦은 밤이라 마땅한 지하철이 없다면 데이트가 끝날 때 우버를 불러주는 건 이해하겠다”면서도 “지하철로 쉽게 올 수 있는 낮 시간대 데이트인데 그러는 건 납득이 안 된다”고 저격했다.

(사진=AFP)
치솟는 식음료 물가도 기름값 부담을 키운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연료비 영향을 받는 식당 물가는 1년 전보다 3.8% 올랐다. 최근 한 조사에서 기름값과 몸단장 비용을 포함한 데이트 한 번의 비용은 지난해 165달러(약 25만원)에서 189달러(약 29만원)로 뛰었다.

타바크닉은 높은 식품 물가 탓에 매칭된 상대들이 칵테일이나 저녁 식사 대신 커피처럼 저렴한 데이트를 제안하게 됐다고 추측했다. 그는 “물가가 오르니 사람들이 커피 한 잔 이상은 하려 하지 않는다”며 “그런데 커피 한 잔 마시러 한 시간 반을 운전해서 가야 하나”라고 되물었다.

존 레이저는 한때 데이트를 위해서라면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까지도 왕복 운전하며 기름값으로 100달러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현실에서 직접 여성에게 다가가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기름값이 갤런당 4달러인데, 나는 도시에서 한 시간 거리에 산다”며 “결국 카페나 길에서 여성에게 말을 거는 1999년식으로 돌아간 셈”이라고 말했다.

방성훈 기자

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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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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