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란은행 금 금고 (출처=영란은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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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금 가치가 고공행진하면서 미국 재무부가 가지고 있는 금 가치를 재평가하는 것으로 미국의 막대한 부채를 해결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월가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 정부 공식 재무제표에 따르면 미국은 약 2억 6160만트로이온스(8200톤)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 전세계 국가 중 가장 많다. 금 보유량의 장부상 가치는 온스당 42.22달러(6만 1000원)로 평가된다. 1973년 미국 의회가 정한 후 약 50년간 불변이다. 총 평가액은 110억달러(15조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최근 금 가격이 온스당 약 2920달러라는 것을 고려하면 미국이 보유한 금의 실제 시장 가치는 약 7650억달러(1103조원)가 되는 셈이다. 단순 회계 평가를 통해서 단숨에 미국 재정을 강화할 수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일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에게 사우디아라비아를 넘는 국부펀드를 만들라고 명령한 이후, 이같은 안은 최근 금 가격 상승과 함께 월가에서 힘을 얻고 있다. 국부펀드를 운영하는 나라 대부분은 흑자 재정으로 펀드를 운영하지만, 미국은 세계 1위 부채국가이기 때문이다. 국부펀드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데 이를 어디서 조달할 것이냐는 의문에 당장 재무부가 가진 금의 가치에 시장이 주목하게 된 셈이다. 베센트 장관 역시 이날 “우리는 미국 국민을 위해 미국 대차대조표의 자산 측면을 화폐화할 것”, “우리는 유동자산과 국내에 보유한 자산을 조합해 이를 미국 국민을 위해 활용하겠다”고 말해 월가의 상상력을 더욱 부채질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서 미국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명된 스티브 미란은 단순한 회계상 재평가뿐만 아니라 금을 매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금을 달러로 매각한 후, 그 달러를 외국 통화로 교환해 트럼프 대통령이 ‘저평가됐다’고 주장하는 통화가치를 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이자수입원이 없는 금괴를 외국 정부 채권으로 평가되면 정부에 추가적인 수입원이 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다만 블룸버그 통신이 익명의 소식통을 보도한 바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같은 아이디어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지는 않고 있다고 한다. 미란 자신도 지적했듯 국가가 가지고 있는 금 일부라도 외화자산으로 전환하는 것은 금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국가부채는 35조달러(4경 6515조원)이며 한해 적자만 1조 8000억달러이다. 미국이 가진 금을 몽땅 내다 팔아도 한해 적자조차 메울 수 없는 셈이다.
자카리 그리피스 크래딧사이츠의 투자등급 및 거시 전략 책임자는 “단기적 적자를 메우기 위해 속임수를 사용하려고 한다면 이에 따른 위험이 단기적 이익보다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한다”며 “그것은 절박해 보이고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각국 중앙은행이 금을 사들이느라 혈안이 돼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금을 처분하면 여타 국가 중앙은행의 수중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각국 중앙은행의 자산보유 구성에서 금의 비중이 높아지고 미국 국채의 비중은 낮아질 수 있다. 국채를 팔아 재정을 충당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시나리오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