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연지 박소영 기자] 부산과 동남권이 ‘지방’이라는 인식의 틀을 깨고 있다. 조선·기계 중심 산업 구조가 무너지며 한때 투자 절벽을 겪었지만, 최근 들어 지역 기반 스타트업들이 속속 성장하며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가면서다. 이전에는 정부 주도로 ‘균형발전’ 관점에서만 접근했다면, 최근에는 민간 펀드들이 실질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배경이다.
이데일리는 10년 넘게 부산 지역 벤처투자를 이어온 이동철 비전에쿼티파트너스 대표 파트너를 신사동 사옥에서 만났다. 그는 “부산에도 충분히 유니콘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됐다”며 “이젠 초기에 머무르지 않고 스케일업(scale-up·초기 단계를 넘어 성장 단계에 들어선 기업에 자본·인력·시장 확장을 지원하는 투자 단계)에 자본이 들어갈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 | 이동철 비전에쿼티파트너스 대표 파트너가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부산 지역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스케일업 투자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사진=박소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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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의 영광 뒤 투자 냉기…이젠 기초 체력 생겼다”이동철 대표 파트너는 대학 졸업 후 대기업과 벤처기업을 거쳐 프랑스에서 MBA 과정을 밟았다. 귀국 직후 한화인베스트먼트에서 투자심사역으로 벤처캐피털(VC) 경력을 시작한 그는 인텔캐피털과 메가인베스트먼트를 거치며 기술·제조 스타트업 투자 경험을 쌓았다.
이후 2016년 그는 부산·영남권 지역 스타트업에 특화된 케이브릿지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지역 투자에 나섰다. 이 파트너는 “당시 부산은 (투자하고자 하는 기업에) 전화를 하면 ‘이자율이 몇 퍼센트냐’고 되묻던 시절이었다”며 “조선업이 너무 잘 되던 때라 외부 투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조선·중공업 중심의 산업이 흔들리자 기업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그는 “지역 산업이 무너지면서 비로소 투자 필요성을 체감하기 시작했다”며 “그때가 진짜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케이브릿지는 이때 약 170억원 규모의 초기 펀드를 결성해 3년간 35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대부분이 극초기(Pre-seed) 단계였지만, 이 중 다수는 성장 기업으로 자리 잡으며 지역 창업 생태계의 신뢰를 높였다.
케이브릿지벤처스는 이후 2024년 비전에쿼티파트너스에 흡수합병되며 통합 VC 체제로 재편됐다. 이동철 대표는 자연스럽게 비전에쿼티파트너스의 대표 파트너로 합류했고, 케이브릿지 시절부터 이어온 지역투자 철학을 바탕으로 부산·동남권 중심의 스케일업 및 글로벌 진출형 펀드 조성을 이끌고 있다.
초기에서 스케일업으로…“부산판 리드 투자자 될 것”일각에서는 여전히 ‘지방 스타트업은 인재난이 심하다’는 시선을 보내지만, 이동철 대표 파트너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동남권은 전통적으로 제조업 기반이 탄탄한 지역”이라며 “반도체·신발·자동차 등 산업이 남긴 인력 풀이 여전히 많다. 수도권처럼 집적도는 낮지만, 인재 수준은 절대 뒤처지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산·울산·경남을 포함한 동남권을 “수도권 밖에서 가장 유망한 산업 클러스터”로 평가하기도 했다. 실제 지역 내 창업지원센터, 액셀러레이터, 초기기업 펀드가 빠르게 늘고 있으며, 부산시 또한 일본·미국 VC와의 연계 투자 및 해외 진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비전에쿼티파트너스도 본사를 수도권에서 부산으로 이전하며 지역 투자에 대한 의지를 물리적으로도 표명한 상태다.
회사는 현재 부산 지역을 대상으로 한 250억원 규모의 스케일업 펀드를 조성 중이다. 초기 단계를 넘어 성장 국면에 진입한 기업에 본격 투자하는 펀드로, 주요 투자 대상은 AI 기반의 생산성 혁신 사업 및 DX, 반도체 기술 기반 기업이 될 전망이다. 이 파트너는 “초기 자금만으로는 유망한 기업이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하기 어렵다”며 “이제는 자본이 스케일업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프트웨어 기업은 진입 장벽이 낮고 글로벌 확장이 용이하다”며 “부산에는 제조업과 결합된 분야의 스타트업에 대해 스케일업 투자를 주도할 만한 리드 투자자가 많지 않다. 이번 펀드를 통해 비전에쿼티파트너스가 그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동철 대표 파트너는 “투자의 본질은 지역이 아니라 산업”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는 이어 “동남권은 여전히 저평가된 기회의 땅”이라며 “이제 스케일업 자본이 들어가야 그 잠재력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