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이데일리 김연지 기자] “유럽 벤처 생태계는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트럼프 2.0 시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가운데 유럽 자본시장이 안정성과 다변화된 투자 기회를 제공하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럽은 글로벌 불확실성을 기회로 삼고, 기술 기반 유니콘 기업을 꾸준히 배출하면서 혁신 생태계를 공고히 하는 모습이다.
이데일리는 유럽 벤처 시장의 현황과 전망을 듣기 위해 영국의 대표적인 펀드오브펀드(fund of fund·펀드에 투자하는 펀드로, 벤처캐피털 펀드에 자금을 넣어 간접적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구조) 운용사 ‘아이소머캐피털’의 크리스 웨이드 공동창립자를 영국 런던에서 만났다. 그는 지금이 유럽 벤처에 투자할 적기라며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 확대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웨이드 공동창립자는 1980년대 북미 최대 통신장비 기업인 노던텔레콤(현 노텔)에서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한 인물로, 휴대폰 위치 파악 알고리즘 개발사 ‘케임브릿지 포지셔닝 시스템즈’를 창업해 2007년 매각했다. 이후 개인 투자자로서 유럽 벤처시장에 뛰어든 그는 2014년 동료와 함께 아이소머캐피털을 설립, 현재 약 8억 유로(약 1조 2471억원) 이상을 운용하며 유럽 전역에서 활발한 투자 활동을 펼치고 있다.
 | 크리스 웨이드 아이소머캐피털 공동창립자 겸 벤처파트너.(사진=아이소머캐피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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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보다 투자 효율 높은 유럽…“기회의 땅으로 거듭”아이소머캐피털은 2014년 영국 런던에 설립된 민간 투자사로, 유럽 전역의 기술 중심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 펀드에 투자하고 있다. 회사는 전체 운용자산의 약 70%는 펀드오브펀드 방식으로 로컬 VC에 투자하고, 나머지 30%는 자체 선별한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아이소머캐피털은 이를 통해 유럽 전역 벤처 생태계에 걸쳐 2500여개 스타트업에 접근하면서 광범위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왔다.
회사의 이러한 투트랙 전략은 분산돼 있는 유럽의 벤처 생태계에서 강점을 발휘한다. 크리스 웨이드 공동창립자는 “유럽은 미국 실리콘밸리와 달리 파리, 베를린, 스톡홀름, 탈린 등 50여 개 도시에 특화된 ‘마이크로 실리콘밸리’가 존재한다”며 “아이소머캐피털은 지역별 네트워크를 활용해 각기 다른 지역의 유망 스타트업과 VC 펀드에 전략적으로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웨이드 공동창립자는 특히 트럼프 2.0 시대를 맞이하면서 유럽에 대한 글로벌 자본시장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의 유럽 방위 부담이 축소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유럽은 기술·경제 전반에 있어 자립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며 “유럽은 독자적인 벤처 생태계와 자체 기술을 기반을 바탕으로 대응할 역량을 다져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 중심의 기술에 의존하는 것에서 벗어나 유럽 기술을 선택하려는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며 “이러한 변화는 유럽 내 기술 스타트업들의 성장세를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유럽 벤처시장의 투자 효율성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약 10년 전 유럽은 미국보다 3배 적은 자본으로 유니콘을 만들었고, 지금도 그 효율성은 두 배 이상 높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웨이드 공동창립자는 “적은 자본을 들이기 때문에 페이스북과 같은 대규모 플랫폼이 탄생하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면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B2B(기업 간 거래) 중심의 알짜 기업들을 다수 배출하며 높은 수익성을 실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AI·바이오·기후기술 경쟁력 최고’…韓과 협력 기대아이소머캐피털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투자자들과의 협력 관계를 빠르게 넓혀가며 전략적 파트너십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하반기 첫 번째 한국 출자자(LP)를 유치한 데 이어 추가 투자자들과의 협력 또한 잇달아 성사시켰다.
아이소머캐피털은 유망 기술 스타트업들과 한국 기업 간의 기술 제휴, 전략적 투자,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형태의 협업 기회를 연계하는 ‘전략적 투자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를 통해 한국 기업들이 유럽 내 인공지능(AI)과 바이오, 기후기술 분야의 성장 기업에 조기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웨이드 공동창립자의 설명이다.
그는 “유럽은 기업용 AI와 기후기술, 컴퓨테이셔널 바이올로지 등 세 가지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쌓아가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이 이러한 혁신 분야에서 유럽 스타트업과 협력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크리스 웨이드 공동창립자에게 ‘유럽 벤처 생태계에 향후 10년은 어떤 의미를 갖느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유럽 벤처생태계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며 “10년 전 20개에 불과하던 유럽의 유니콘 수는 현재 400개 이상으로 20배 이상 증가했다. 향후 10년은 유럽의 성장과 발전에 있어 아주 결정적인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