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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고 떠나자' VS '지금은 안돼'…창업주가 M&A를 대하는 방식

  • [위클리M&A]
  • 자본시장 칼바람에 기업들 휘청
  • 비상상황에 M&A 시각차 가속화
  • 조용한 M&A로 경영권 넘기기에
  • '회사 매각은 NO' 버티는 사례도
  • 등록 2022-11-26 오전 7:00:00
  • 수정 2022-11-27 오후 10:13:28

이 기사는 2022년 11월 26일 07시 00분에 마켓인 프리미엄 콘텐츠로 선공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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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켜켜이 쌓인 악재 탓에 사업하기 녹록지 않은 요즘이다. 불과 지난해만 해도 이런 일은 상상조차 못했다. 시장에 유동성(시중자금)이 넘치며 투자 유치가 최적화된 상황에서 ‘사업을 접겠다’고 생각할 창업주는 없기 때문이다. 적게는 수 백억원, 많게는 수 천억원 투자를 밑천 삼아 사업규모를 불리고, 내친김에 ‘유니콘’까지 노리던 기업들이 시장에서 쏟아지던 시기였다.

그런데 올 들어 이러한 낭만회로는 사치가 됐다. 해외 전쟁 소식에 원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만 해도 남의 일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뛰는 물가를 잡기 위해 널뛰기 시작한 금리 여파로 그 많던 투자자들은 몇 달 새 자취를 감췄다.

그래서일까. 위기에 내몰린 창업주들이 회사를 매각하거나, 또는 그런 처지에 놓인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상황을 대처하는 경우는 저마다 다르다. 어떤 창업주는 자신의 회사를 키워줄 이들에게 경영권을 파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아직은 팔 시기가 아니다’며 기회를 더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스마트폰용 특수필름·복합소재 가공기업인 세경하이테크를 일군 이영민 대표는 최근 이상파트너스·자비스자산운용 컨소시엄에 자신의 지분 20.68%를 804억원에 매각하며 최대주주 자리에서 내려왔다. 지난 2019년 7월 있던 IPO 간담회에서 이영민 세경하이테크 대표가 회사 소개를 하고 있다. (사진=세경하이테크)
‘조용한 M&A’ 감행한 세경하이테크

스마트폰용 특수필름·복합소재 가공기업인 세경하이테크(148150) 이영민 대표는 최근 이상파트너스·자비스자산운용 컨소시엄에 자신의 지분 20.68%를 804억원에 매각하며 최대주주 자리에서 내려왔다.

25일 종가 기준 시가 총액이 1768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잖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6년 세경하이테크를 창업한 이 대표는 최대주주 자리에서 물러나지만, 2대 주주이자 최고경영자(CEO)로서 주력 사업인 폴더블(접히는) 스마트폰 부품·소재 사업에 계속 참여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일로 창업주가 수백억원을 챙겼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혹자들은 그 부분에만 집중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업계에서는 이 대표의 지분 매각을 두고 ‘한 단계 도약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를 내린다. 이대로 가면 회사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세경하이테크는 2018년 매출액 2566억원에 영업익 386억원을 기록하며 나름 쏠쏠한 실적을 거뒀다. 미래에 대한 장밋빛 기대감이 무르익은 것도 잠시, 2020년 영업익 20억원을 기록하며 위기에 봉착했다. 그해 2200억원 수준의 매출을 기록한 상황에서 나온 영업익 급감이라 충격은 더 컸다. 당기순이익은 35억원 손실이었다.

이듬해인 2021년 매출과 영업익 모두 반등했지만, 수년째 2000억원 중반을 못 벗어나는 매출과 크게 빠진 영업익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 모색을 두고 전문 경영전략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된 시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창업주들은) 회사가 영위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전문적일 수 있지만, 자본시장 분야에 대해 조예가 깊지 않은 경우가 꽤 있다”며 “세경하이테크 뿐 아니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로 회사를 매각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메쉬코리아는 회사 정상화를 위한 자금 유치가 여의치 않자 회사를 매각한다고 하더니 최근에는 또 회사를 팔지 않겠다며 입장을 뒤집었다. (사진=메쉬코리아 홈페이지 갈무리)
회사 판다더니 돌연 안 판다는 메쉬코리아

비교적 조용하게 경영권을 매각하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지금은 매각할 수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배달 대행 서비스 ‘부릉’ 운영사인 메쉬코리아가 대표적이다.

메쉬코리아는 꽤 흥미로운 단계를 밟고 있다. 회사 정상화를 위한 자금 유치가 여의치 않자 회사를 매각한다고 선언하더니 최근에는 또 회사를 팔지 않겠다며 입장을 뒤집어서다.

자본시장에 따르면 지난 22일 채권단에 있는 OK캐피탈 주최로 열린 메쉬코리아 경영권 매각 관련 관계인 집회에 창업주인 유정범 메쉬코리아 이사회 의장과 솔본인베스트먼트(7.5%)가 참여하지 않으면서 매각 작업에 브레이크가 걸린 상태다.

앞서 유 의장이 지난 2월 자신의 지분 14.82%와 김형설 사내이사(6.18%) 등 지분 전량인 21%를 담보로 OK캐피탈로부터 360억원을 대출받았는데, 이를 제때 갚지 못한 것이 매각의 발단이 됐다.

매각 작업에 돌연 균열이 발생한 이유는 매각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메쉬코리아에 투자한 이들은 회사 매각만이 자금을 돌려받을 기회로 보고 있다.

OK캐피탈은 만기가 지난 360억원 규모 주식담보대출과 관련해 메쉬코리아 측에 기한이익상실(EOD)을 통보할 계획이다. EOD는 투자자들이 운용사에 빌려준 자금을 만기 전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해당 기업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이 크게 꺾인 나머지 원금상환조차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 실행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편 생각은 다르다. 추가 투자를 유치하고 구조조정을 통한 조직 슬림화로 실적이 개선된다면 매각하지 않아도 자금 상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지금 매각에 나설 경우 예상을 크게 밑도는 헐값에 회사를 팔아야 하는 상황을 쉽사리 납득하지 못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한때 기업가치 5000억원이 거론되던 회사가 지금 매각을 한다면 그를 한참 밑도는 가격에 팔리고 차입금을 상환하는 구조로 갈 수 밖에 없다”며 “이번 매각 이슈를 일단 넘기고 추가로 돈을 빌려 회복하는 것이 더 났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자식 같은 기업…파느냐, 마느냐

창업주들에게 기업은 ‘자식’으로 비유되곤 한다. 밤낮 가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바쳤으니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하루가 다르게 회사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을 수 있다.

자식을 대하는 부모관이 가정마다 다르듯 자신이 일군 기업을 대하는 창업주들의 마음가짐도 모두 같을 수는 없다. 경영권 매각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만 봐도 그렇다. 여러 이유로 경영권을 매각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끝까지 사수하는 이들도 있으니 말이다.

누가 옳다, 그르다 단정 짓기 어려운 상황에서 최근에 만난 한 자본시장 관계자의 말은 최근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그의 말로 끝맺음을 해볼까 한다.

“국내에서는 회사 경영권을 파는 이들을 비난하는 경우가 아직 남아 있는 거 같더라고요. ‘돈만 보고 사업을 시작했느냐’며 색안경을 끼는데요. 창업 천국인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는 매각을 전제로 창업한 회사가 훨씬 더 많습니다. 망하는 회사를 보면서 가엾게 생각하지 않듯, 잘 된 회사의 매각을 비난할 수 없죠. 그 관점에서 생각하면 위기 상황에서도 회사 매각은 안 된다고 버티는 걸 합리적으로 바라보기도 어려운 거 같아요. 이미 사세가 기운 회사를 두고 ‘조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상황이 나아질 겁니다’라고 말하는 걸 모두가 동의할 수 없죠. 특히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분통 터지는 일일수도 있잖아요. 차입금 이자마저 껑충 뛴 요즘 같아서는 더욱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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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4회 SRE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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